2019년 7월 6일 토요일

수의 무녀

“1611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스테파노의 입을 빌어 ‘생각은 자유다’라고 말했지요. 그것은 사실 인간사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 통념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지요. 그 전엔 그렇게 적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극작가에게는 좋은 일이었지요. 오, 인간이 생각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부터의 일이지요. 인간은 생각을 은밀하고도 신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간섭할 수 없었지요. 추궁할 수 없었지요. 독심술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당신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당신 또한 내 생각을 읽을 수 있겠지요. (저는 지금 당신을 창피 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내 생각을 읽을 수 없어서 다행입니다.) 끔찍하고 무서운 일. 장막 뒤서 인간은 온갖 것을 다 생각했지요. 정말로 온갖⋯ 지금도 다들 그렇겠지요. 맞습니다. 어제는 참 우울하고 무력했더랬죠. 기분 나쁜 얘길 하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헤헤. 저는 제가 우울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어요. 괴로운 순간들이 있을 뿐이고, 그런 순간은 저의 연장이 아니므로 결코 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특히 당신은 마음을 좀 편히 가지세요. 아시겠어요? 일단 물을 좀 마시고 오겠습니다.”

그가 물을 마시고 옵니다.

“가끔은 내가 환전소에 죽치고 앉아 있는 환전원 같다고 느낍니다. 글말과 생각의 교환비, 오늘 환율 다르고, 어제 환율 다르듯 고정된 값을 기대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같은 단어와 문장이라도, 어제 죽으면 천국 가고 오늘 죽으면 지옥을 가는 인간과 같이. 모든 것이 내 의지와 무관하다는 것도⋯. 그리고요. 포착되기 이전의 생각이라는 것은, 끝없는 변질과 말랑말랑함 속에서 건져지기, 혹은 채굴되기를 기다리는 그 무언가, 그게 과연 뭘까요? 우리 안의 전기 신호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런데 언어 없이도 가능할까요? 이미지? 장면도 이미지도 언어가 아닙니까. 금 간 보석 같은 것을 상상하며 당신 마음을 생각했다고 우겨본다고 한들.”


“우리는 행성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 행성은 시궁쥐처럼 잿빛입니다. 위성이 보이죠? 마찬가지로 쥐색입니다. 그들은 별이지만, 별인 것만은 아니래요. 아이슬란드어로 컴퓨터는 ‘수數의 무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그는 초조한 듯 헛박수를 칩니다. 엇갈린 손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저 별은 행성 크기의 컴퓨터이지요. 이해할 수 없는 기술로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다. ‘수의 무녀’가 비유인 것처럼 컴퓨터라는 말도 비유이지요. 그냥 다 비유인 거, 알지요 당신은. 하여간 별의 맨틀은 스크린입니다. 우리도 꽤 잘나가고 있었지요 그쵸. 이메일로 보낸 닭강정을 다운받아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진짜 미쳤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행성 크기의 컴퓨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얼마만큼의 미래를 내다보아야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아요. 그리고 저 컴퓨터가 하는 일이란 것은 도저히⋯ 우리 수준에선 기획할 수 없는 거지요.  우주적 단위, 못해도 계界 단위의 작업일 겁니다. 그게 무슨 작업인지를 알아내는 것만 해도 풀기 어려운 매듭이었지요.”

그는 주머니를 뒤져 진공포장된 비스킷 하나를 꺼냅니다.

수의 무녀 - 입출력의 건 - 화상 담당자가 유약함 - 머릿속 사과, 우리 손에 들어온 - 정비공 대원 - 갑론을박 - 양가감정 - 윤리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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