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가 가지를 끊고 나를 본다. 웃는 얼굴. 광대가 깎은 나무들은 테마파크인 것처럼 모양이 이상했다. 그래서 나는 마주 웃었다. 저 광대의 눈에 내가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광대가 이상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광대는 이상했다. 나는 웃음이 일그러졌고 광대는 나를 보며 웃지 않았다. 아까까진 웃었는데. 지금은 웃지 않는다. 무표정한 광대 얼굴. 그 뒤로 테마파크 같은 나뭇가지들. 광대가 내 뒤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아직 깎고 다듬지 않은 정원의 나머지 장소를. 여기는 광대의 정원이었다. 광대의 안부를 묻기보단 특별한 정원의 모양새에 관심이 있어 오는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나, 나는 광대 앞에서 생각이 저해되었다. 나의 리듬이 느려지고 있었다. 비 올 만하던 날씨에 빗방울이 하나 떨어졌고 나를 바라보던 광대가 다시 환한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검지 손가락을 자기 입 위에 올렸다. 무엇으로부터? 조용하란 뜻인 걸까?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걸까? 광대가 웃음을 떠올린 것은 안도되는 일이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 앞에선 여기 있기가 난감했었으니까. 난 여기에 왜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자, 김광석의 노래가 한쪽에 있는 공원 스피커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광대가 공손하게 눈웃음 지으며 왜 여기 있었는지 모를 나에게 뒤늦은 인사를 한다. 나는 광대의 시간을 빼앗고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광대도 마찬가지로 나의 시간을 뺏은 것과 다름없었으나, 나는 왠지 나에게 동정적인 구석이 있다고 느껴졌다. 저 광대에게는 선의가 대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무엇을? 광대는 다시 쉿, 하는 제스처를 했고 검지 손가락이 그의 입에서 다시 떨어질 때 그의 턱 주변에 걸려 있던 마스크도 함께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가 마스크를 걸고 있었던 걸 몰랐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끝났다. 다른 김광석의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광대가 손에 그러쥔 마스크를 놓는다. 김광석의 노래는 이렇다 할 감정을 담고 있었는데 와닿지 않았다. 여기로 오기 전까지 나는 좋아했었는데 말이다. 김광석의 노래를. 여기로 오기 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지? 그것을 광대가 보며 눈웃음 짓는 것 같았다. 새로 꺼낸 마스크를 다시 걸고. 올라가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려오려는 듯 말을 마쳤다. 그 사이에 있던 말은 왜, 왜…… 뒷말은 잘 들려오지 않았다. 여기저기 과장된 나뭇가지 모양들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광대가 뒤돌았고 보이지 않는 그의 입에서 나직이 아까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아니, 들려오기보단 다가왔다. 나에게 닿아 왔던 것 같다. 아, 생각났다. 나는 검은 고양이를 좇아 여기에 왔다. 그날은 지금처럼 공기가 습하고 빗방울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광대가 한 말처럼 그날은 오늘로 닿아 왔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은 그날이, 앞두었던 그날이 미루고 있었던 오늘로 왔었다는 것이다. 광대는 이렇다 할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으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무엇을. 그 검은 고양이는. 나는 평범한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것이 후회되었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무엇에 대한 준비를?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다 기억나지 않았어도 나는 그동안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다. 광대는 내 앞에서 웃었다. 여기서 정원 만들기를. 하고 있죠. 그 검은 고양이는. 나도 잘 모르겠군요. 광대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으나 오직 표면적인 부분만 건드릴 뿐이었고 그는 나보다 준비가 된 것이었음이 분명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되는 건가요. 모두 노는 시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광대 당신이. 이들을 여기로 불러 모은 건가요. 아니요. 스스로들 온 것입니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죠. 광대는 세 번째로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나는 그에게서 의미를 가져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좇았던 검은 고양이에게 가고 싶었다. 광대는 잠시 기다려보라는 듯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광대의 품에는 검은 고양이가 안겨 있었다. 그렇게 광대가 나타낸 것은 광대 자신보다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것이. 검은 고양이가 뛰어내려 야옹,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에게로 다가와 발바닥을 꾹꾹 눌렀다. 나는 검은 고양이를 안아 들고 광대에게 말했다. 이것이 내 기다림의 결과입니까. 광대가 고개를 저었다. 그와 어떤 말을 나누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광대나 고양이에게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고양이가 내 손등을 핥았다. 부드럽고 까끌까끌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나는 광대나 고양이를 제외하고도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나도 마스크를 쓰고 싶었다. 말할 때는 마스크를 내리고 그것을 손안에 쥐고 있다가 내려놓고 싶었다. 광대처럼. 나는 광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좇은 검은 고양이를 감쪽같이. 불러내는 일을 할 수 있는 광대. 허공의 만족을 위하여. 자연스럽게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겐 이성이 있었다. 나는 광대가 아니었다. 그러자 광대가 잠시 나를 무표정하게 쳐다봤다. 나는 그 존재와 더 이상 교분 나눌 것이 없었다. 독특한 이성이랄 수 있는 광대가 그런 날 보며 마주 웃었다. 그런 뒤 그는 내 뒤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무들을, 곧 테마파크처럼 가꾸려고 가늠하려고. 나는 광대에게서 사선으로 나란히 걸으며 긴장을 버리지 않았다 고양이가 내 뒤를 따라오는지를 살폈다. 따라왔다. 나는 광대를 방해하고 서 있지 않았다. 그런 도중 가운데쯤의 허공에 누군가의 웃음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눈에 보이는 웃음은 나타나기만 했을 뿐 자기가 누구의 것인지는 표시되지 않았다. 광대가 그 웃음을 만지려는 듯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 품에 있던 고양이가 그곳으로 천천히 뛰어내려 걸어갔다. 거기에는 웃음이 이미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흔적]이 남았는데, 나는 그것을 보고 따라 웃지 못했다. 그건 내가 모르는 것이었으며 이미 지난 웃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안다는 생각이 곧이어 들었다. 지금 서로 가까워져 가고 있는 저 광대와 고양이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왜인지 익숙한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분위기란 것과 비슷했다. 그것에게로 광대와 고양이가 다가가 셋이 50cm 정도의 원 안에 있게 되었고 광대가 재밌는 것이 생각났다는 듯 원 안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하자고, 아무도 안 듣는 권유를 했다. 내가 심판이라고. 고양이는 그것을 묵살했고 둘 사이에 엷어져 가는 그 웃음의 흔적은 이제 [증거]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 기다리고 있으면 [쓰레기]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된 웃음이었던 것은 밖으로 내던져졌다. 광대의 손에 의해. 그것은 탄력이 있는 것처럼 부드럽게 던져진 곳으로 내려앉았다. 기체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잡고 싶었다. 그것은 내 바람이자 한계이기도 했다. 그것은 흔적이자 증거이며 늘 쓰레기가 될 테지만 나는 그럼에도 그것이 웃음의 장막 저편의 다른 무언가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했다. 이 무대는 아까 나타난 웃음으로 이미 끝이 난 극이었고(아무도 웃지 않았으나) 남겨진 이들에겐 아무런 유열도 없었다. 나는 이들이 그런 배우들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배우들이 광대가 되고 고양이가 되는지 알고 있다. 그건 재미있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 생각이 부끄럽기도 했고, 이들이 배우로서의 과거를 가졌다면 존중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슬레이트를 내린다는 표시를 했다. 그러자 [가능성]이 뚱뚱한 고양이의 엉덩이로 쿵 떨어졌으며 광대와 고양이는 훤칠한 인상의 남녀가 되어 고양이였던 배우가 광대였던 배우의 뺨을 한 대 때리고 뒤돌아서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가 광대 남자 배우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원래 고양이였던 여자 배우는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이 정원에서 나갔고 정원 안은 금세 어두워졌다. 지금 누군가가 서 있는 이 가지 숲 아래엔 무언가 작은 새가 있었는데 그것은 웃음과는 달랐다. 말로만 듣던 슬픔인 것 같기도 했다. 지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정원 안의 선생님에게 혼날 것이었다. 정원은 그런 생각을 하곤 웃었다. 김광석의 노래를 다시 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