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 땅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 침몰을 감지했을 때
침몰은 멈추었다 더 이상
침몰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누구라도 그곳에 알량한
돌 하나라도 쌓았다면 침몰은 계속되었을
지 모른다
우린 내달렸다
가장 높은 곳으로 우린 서로의 두
어깨가 찢어지도록 붙잡고 늘어졌다 우린 둘 다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살아남아야 하고 그것은 바로
나여야만 한다. 우린 서로의 생의
찌꺼기를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세상 언저리에서
벼랑 끝보다는, 간신히 안락한 곳에서
죽음이 보이는 곳에서
등지고 서서
나보다 이 세상이 먼저 탕진하길
기다리면서
가늘어 빠진 팔뚝에서
온 생이 소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