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4일 토요일

초월일기 5

* 2023년 2월 2일

소공포를 만났다. 소공포는 

말이 많았다. 그 점이 놀라웠다. 소공포가 말이 많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소공포는 
나와 같은 유형의 인간이었다. 이 유형이 어떤 유형인지는 비밀이다. 정확히는, 차마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유형의 사람들은 이 유형의 사람을 만날 때까지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를 철저하게 숨기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그래서 나도 소공포도 우리가 같은 유형의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만 알고 있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와 반대되는 유형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말 거야 

라고 우리는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오리온 초코파이 정 CF에 나오는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오리온 초코파이 정 CF에 나오는 노래(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속으로 열창하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소공포와 한참 폭풍의 언덕 같은 수다를 떨다 목이 말라 음료를 시키기 위해 카운터로 갔을 때는 

오필리어가 왔고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맥줏집으로. 오필리어는 소공포의 대각선에 앉아, 이전에는 본 적 없던 수줍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얕은 기침을 여러 번 하며 말했다.

나 코로나 아니야

나는 오필리어의 말을 믿었다. 오필리어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진. 하지만 오필리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생각했다. 코로난가? 그러나 오필리어가 계속 수줍어했으므로 나는 코로난가? 묻는 대신 넌지시 말했다. 

하하. 아닌 거 알아. 하지만 3일 뒤 걸린다면 네 탓할거야. 

내 조상 중에는 분명 악마가 있을 것이다. 

소공포는 내게 밥을 샀고 
오필리어는 나와 소공포에게 칵테일을 샀다. 
나는 소공포와 오필리어를 끌고 코인노래방에 갔다. 

그리고 열창
열창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소공포가 준 엽서를 읽었다. 그 엽서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눈썰매장에서 구입한 엽서였는데, 새하얀 엽서 위에 작성된 글씨체(글씨 아니다. 글씨체다.)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중학생이다! 

나도 중학생이었으므로 나는 바로 소공포에게 카톡을 했다. 소공포는 말했다. 

반갑다
친구야...... * 


* 2023년 2월 3일

요괴를 만났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요괴가 말했다. 보고 싶었어... 나는 대답하는 대신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에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 


* 2023년 2월 2일

소공포를 만나기 전에는 별꿈밤을 만났다. 별꿈밤에게 나는 말했다. 이제 저는 말을 정말로 조심하고 싶어요. 어떤 말은 가슴에 남아 평생 그 사람을 못살게 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뭣도 모를 때 말로 상처 준 사람들에게 모두 사과하고 싶어요. 별꿈밤과 만났을 때, 별꿈밤은 내게 동그란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는 티라미슈를 건넸다. 그 통에는 <김해솔>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는데, 이건 별꿈밤이 재작년에 가장 좋아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스티커다. *


* 2023년 2월 3일

별꿈밤에게 받은 티라미슈를 냉장고에 넣지 않고 잠든 바람에 다 녹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티라미슈통을 냉장고에 넣고 현관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군,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알았다. 아무렇지도 않지가 않군. 그래서 별꿈밤에게 전화를 걸었다. *


* 2023년 2월 4일

요괴가 내게 선물해준 백팩의 색은 파란색이다. 원숭이가 달려있다. 나는 이 가방에 허쉬가 준 슬램덩크 키링과 토리가 준 센과 치히로의 열쇠 고리를 달았다. 그리고 지금 이 일기를 쓴다. 어제, 소공포와 오필리어와 있을 때 나는 말했다. 나는... 모든 예술작품들을 통틀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영향 받는 것 같아. 난 너무 나약하고. 사람들 없이는 살 수가 없어. 그걸 알아. 


* 2023년 2월 3일

독해왕을 만났다. 독해왕과 헤어진 뒤에는 이런 일기를 썼다. 타인의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자기 자신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는 그 욕구가 타인의 욕구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나는 그랬다. 모르는 거니까. 어쨌든.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