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9일 일요일

셰익스피어의 신발

그러니 부서지지 말아. 네가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 바람이 불어도 미끄러지지 않고. 눈이 와도 무뎌지지 않고. 그리고 비가 와도 끄떡없는 사랑으로. 네가 그대로 있는 것은 작은 동물들이 널 눈여겨본다는 뜻. 인간의 몸이 아닌 그늘을 만들어주는 보금자리나 기대어 올라설 수 있는 장소로서 인성이 작용할 거리가 없는 거라는 거. 넌 거기 혼자 있으면서 대낮과 심야의 구분이 없는 작은 오후 6시경으로 웃을 수 있어. 네 옆에 있는 골목들. 새벽에 그 거리를 걷고 있는 낯선 이들. 나도 그중에 하나였어. 망부석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셰익스피어는 어깨에 견장을 차고 있군. 새벽에 그렇게 걷고 있는데 다른 이의 발걸음 소리가 나고. 나는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어. 왜 이런 곳에 나 말고 사람이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났어. 그와 나는 결국 같이 걷고 있었어.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질 모르고. 네가 생각하는 세상의 기묘하고 그걸 생각해낸 사람이 귀여워지는 함수 관계들을 엮으면 거미줄이 되길. 여기 거미줄이 있고 시선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거미가 있지. 그 거미와 같다. 그 거미줄과 같이 우리는 내부에서 건물을 높이 올리는 사람들. 네가 장소로 기능할 즈음부터 해서 숲속에는 새소리가 울려 퍼진다. 도어락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나길래 왜 사람들은 새소리들을 유용하게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 씨알들이 땅속 깊이 잠겨 있고 그것들이 자라날 즈음부터 해서 잡초들이 무성히 엉긴 네 신발 밑으로 저벅저벅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그러니 부서지지 말아. 부서진다는 것은 우선 풍화를 견디지 못한 것들이 돌가루를 날리기 시작한다는 뜻. 그것은 곧 비가 내려 돌가루들이 다시 씻겨내려갈 것을 말하고. 한번 부서진 것은 다시 부서지기 쉬우니까. 웃김과 같지. 넌 웃긴 얘기를 많이 생각하고. 넌 그대로 있고. 평소에는 무거운 발이 셰익스피어 같았어. 왕이 노하였다. 신분이 높은 이들은 허름한 의복을 입고. 신분이 낮은 이들은 잘 다려진 군복을 입고. 중간의 이도 저도 아닌 이들이 오늘 연회의 주인공이네. 다른 성별의 옷으로 바꿔 입었지. 어울리지 않았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한 사람 덕분에 연회의 면이 살았지. 아니, 이렇게 잘 어울린다니! 왕의 기분을 풀어주는 연회였어. 사치를, 허영을, 격식을, 교양을 왕에게 가르친 이들은 꼭 그만큼의 명예가 있었고 다행히도 셰익스피어는 그중 하나였다. 넷 중에 뭐인지는 몰라도.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어. 왕에게 그렇게 하듯. 물론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 바뀐 옷에 어울리는 단 한 사람은 거기서 구혼을 받기도 했는데, 허름한 옷을 입은 귀족들이 주위에서 품위 있게 웃었지. 물론 장난 같은 인사였을지도 몰라. 그런데 거기서 딱 한 사람만큼은 진심이었어. 그게 나였어. 그러니 부서지지 말아. 우리는 옷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없었어. 돌가루를 흘리지 말아. 부서지지 말아. 내가 진심이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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