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책을 읽는 나날

책을 읽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내가 책을 읽는 방에는 주황색 조명이 있고 오렌지 주스를 항상 컵에 따라놓는다. 유리컵의 안에는 물기가 조금 맺혀 있다. 책은 읽는 사람들을 낮은 데로 이끈다. 저자의 의도라는 것은 결국 해석하기에 달렸는데 나는 그 해석을 어떤 책임감 없이 방기한다. 그리하여 낮은 데에는 웃음 또한 있다. 저속한 앎을 의도했을 때 웃음이 뒤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내가 읽는 글에도 그렇지만 분명한 건 코미디언들이 자신의 대본을 읽으면서 웃는다는 것이다. 웃음은 그런 것이다. 고상하기도 한 웃음. 자신이나 타인이 낮을 때를 기억하게 한다. 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갖고 있지 않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책은 극본이나 작품 같은 것이 아니어서 저속한 앎을 유도하지 않는(읽는 내내) 경우가 많다. 어떤 작가의 경우 숭고의 감정이 있는데 내가 해석하기로 그것은 HBO에서 만들어지는 대규모 스릴러 극과 구분되기 어렵다. 텍스트는 더러 판타지(동화적)일 때가 있고 일상을 다룬 책을 나는 거의 읽지 않는다. 패러디 또한 읽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와 관련해서 나는 단단히 판타지를 갖고 있다. 읽는 책은 오로지 내가 고른 것으로만 한정되며, 그것은 나만의 집 이 장소여야만 하고, 내가 직접 사 온 오렌지 주스를 따라 마신다는 것이다. 사실 이 방에서 책을 읽은 적이 없다. 나는 그 생활을 가끔 떠올리기만 했었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나날을 나는 아주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은 결코 짧아져 나에게 돌아온 적이 없었고 다소 필요에 의해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일이 굴절된 채로 과거의 인상에 계속 남아 있었다. 내가 책을 읽는 나날을 판타지로 만든 건,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하여 나에게 도달하는 일이 없도록 만든 건 책이 나에게 있어 더는 매력을 끼치지 않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더는 어떤 책도 나에게 도달하지 않았고 나는 이 외로운 장소에서 의자에 앉아 손님들이 내게 권하는 책들의 서지정보를 흘깃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만 하면 되었다. 나는 낮은 데로 가기 싫노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은 사실 더 분별없는 데로 향하라고, 더 그런 데가 있노라고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하지만 오렌지 주스를 따라놓고 마시지 않는, 내게 영원히 도달하지 않는 이 오후 8시의 시각이 난 마음에 들었다. 돈이 없어서 오렌지 주스를 살 여유가 되질 않았고, 그 즈음에 난 항상 옆으로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오늘 나는 책 하나를 구했는데, 과거에 있었던 판타지였다. 그를 위해 오늘 8시의 시간을 비워두었다. 하늘에 떠 있던 성 같은 환상을 나는 포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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