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일 월요일

9월 더미 태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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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펜이 아니라 검은 펜으로 글씨를 쓰고 싶다. 써서 붙여 놓기다. 쓰는 행위를 하고 싶다는 얘기지만 뭘 쓸 것이냐가 실은 중요하다. 오래된 소설의 유서 깊은 부분이 좋을 것이다. 아니면 오래된 팸플릿. 포이어바흐 테제 같은 것. 버리기 아까워 붙여 놓겠다는 얘기지만 실은 붙여 놓는다는 행위가 중요하다. 나는 벽에다 뭘 그려 붙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벽이 비어 있는 게 이상한가? 벽 보기를 좋아하는 것일 테다. 말도 모르는 아기 때부터 누워서 멍하니 벽을 보고 있곤 했다. 기억이 난다. 거짓말이지만. 하여간 그렇게 했다. 그랬던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벽이 좀 허전해 보였음이 분명하다. 저 벽에다가 뭘 좀 붙이면 좋겠군, 했던 것이 분명하다. 조금 자란 다음에는, 침대에 누워 벽지의 패턴이나 벽과 천장이 모이는 구석을 한참 보았던 기억이 난다. 벽에다 처음 뭘 붙였던 건 초등학생 때였다. 그림 같은 걸 그려서. 내가 그린 것을 계속 들여다 보곤 했다. 아기 때의 다짐을 떠올렸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글자를 붙인 적은 없다. 언제나 그림이었다. 그림 쪽이 획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볼 것도 많다. 더 좋은 글씨를 쓰고 싶다. 종합적으로 필요한 것은 족자 모양의 화이트보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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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꿈 얘기가 보통 아무 재미가 없는 것과 같이 내 꿈 얘기도 써놓고 보면 별 재미없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일기보다 더 재미없는 정도다. 꿈은 글로 남길수록 더 많이 꾸게 되는데, 꿈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즐거운 일은 아니다. 꿈은 감각과 감정과 상황과 이미지의 뒤범벅일 뿐이다. 서랍을 정리하기 위해 쏟았을 때의 혼돈 같은 것이다. 그 재료를 가지고 아무리 조리 있게 말을 만들어 봤자 뭔가의 뒤범벅일 뿐이다. 꿈이 조금이라도 재밌다면 꿈의 이전 때문이다. 꿈 이전의 맥락이 점점 흐려지면서 꿈의 재미도 점점 떨어진다. 꿈 자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종류의 것, 문자로 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렇기 때문에, 꿈 기록하기는 언제나 구미가 당기는 계획이다. 모으기 좋은 허망한 것이니까. 그것은 나의 것이 전혀 아니면서도 나만의 도록처럼 보일 것이다. 굳이 하겠다면 공개되지 않아야 하겠다.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도록. 그러나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 그런 일은 해봤댔자 금방 질리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꿈 이야기가 자신의 뒤쪽, 미래와 관계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어떤가? 말하자면 꿈 해몽 일지의 형태라면? 요셉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비록 지금은 이사야를 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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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하는 일은 대개 바보 같은 일이고, 그래서 혼자서 하는 일은 정말로 진지한 일이다. 하지만 최고로 혼자 하는 일이라도 교류에의 열망이 거기에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교류회, 가상의 교류회를 혼자서 만들기, 이것은 오래된 기획이고 주제다. 이 가상의 교류회는 마음대로 소집되며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한다. 사람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제한된 자원을 놓고 합의할 필요도 없다. 무제한 완전 갖춤의 교류회. 하지만 그래서야 무엇을 왜 교류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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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으로! 아름다움의 필수 요소인 균형과 긴장감과 어려움은 결국 '통제할 수 없는 바깥'과 '복잡해지려는 안쪽'의 경계면에 깃든다. 그것을 가리켜 형상이라 한다. 나는 그렇게 본다. 기획들의 외부 접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된다는 얘기다. 실루엣만으로 그 뒤에 선 군중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 인도자 같은 것을. 그 인도자는 리듬을 안다. 스케일을 안다. 참과 거짓이 자리를 바꾸는 순간을 안다. 그렇지, 자꾸 이런 이야기는 쓰지 말자. 형상을 만들자. 형상으로!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고! 시리즈는 쉬운 형상에 속한다. 시리즈 내 리듬이란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스케일 큰 것이 필요하다. 리듬은 리듬의 없음을 통해서만 있다. 요는 시리즈가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단발의 뭔가를. '특별 기획'을! 내가 원한다면 이 취미를 위해 월에 1만원까지는 지출할 수 있다. 고료로 만 원을 주고 글을 하나 받는다. 받아서 특집입고 태그를 붙이고, 관리인 계정으로 올린다. 접촉 가능한 주변의 필자와 주제도 짧게 생각해 봤다. [가을특집] "수염과 커피", "초등학생을 위한 인술강의", "기회의 땅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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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르날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독자투고를 받을 수도 있겠다. 메일로. 자유주제로. 또는 주제를 정해서. 한 번 보고 치울 만한 짧은 공짜 글을. 게재 심사는 아마 관리인이 할 것이다. 일단 윤리 심의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고 그 다음 제비뽑기나 사다리타기, 심사-추첨제다. 하지도 않을 텐데 벌써 귀찮다. 지면상의 제한이 없는데 추첨이 왜 필요한가? 제한은 만들면 그만이다. 아니 그보다 도대체 누가 투고를 한단 말인가? 그와 관련해서는 절대로 오지 않는 투고를 언제까지고 기다리는 이야기나 할 수 있을 것이며, 기적적으로 온다 해도 관리인이 대부분 쳐낼 것이다. 하지만 투고 자체는 나쁘지 않다. 최근 많이 읽힘 가젯을 독자투고란으로 바꿔도 된다. 일주일에 하나를 받아서 매주 바꾼다면...? 그런데 어차피 관리인이 올리는 거면 그냥 자기가 직접 써 버리면 그만 아니겠나? 투고도 관리인이 하고 심사도 관리인이 하고... 필진에게 최대한의 자유도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못할 것도 없는 기획이다. 나 자신에게 최대의 자유를... 하지만 그래서야 무엇을? 왜? 여기서 나 자신의 운신 폭은 더 좁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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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 굿즈의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손수건은 가볍고 얇고, 그걸로 할 수 있는 일도 적지 않다. 일테면, 뭔가를 닦을 수 있다. 보관도 배지에 비해 훨씬 쉬운 편 아닌가? 매듭법을 배워 유행시키자. 스카우트처럼. 손수건대도 만드는 것이다. 손수건대에 손수건을 달아서 백팩에... 옛 일본의 족경대처럼. 두껍게 만들면 핀버튼이나 배지 따위를 달 수도 있다. 이건 완전 러브라이버구나. 곡물창고의 굿즈를 만든다면 역시 삼베 손수건이겠다. 이걸 벽에다가 붙여 놓으면... 또 벽인가? 벽이 아주 많이 필요하겠다. 아주 많은 내 몫의 벽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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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마자는 죽은 쥐 한 마리가 제법 멀쩡한 상태로 놓인 것을 봤다. 분명 어디 멀리 있는 건 아니다. 이사야 말이다. 재가 앉을까봐 밥그릇으로 캔을 덮었다. 가릴 것 같진 않지만. 메모들과 함께 타고 있는 것은 의자가 되려다 만 나무토막이다. 연장을 꺼내 준 관리인에게 미안하다. 지금 앉은 의자는 주워 온 것이다. 싣고 온 것. 약간 높다. 다리를 좀 잘라 볼까 하다 그만뒀다. 내가 만들었을 리 없는, 낡고 야무진 의자를 보고서도 관리인은 별말 없이 연장을 받았다. 관리인에겐 그런 세심한지 무심한지 모를 구석이 있다. 혼자서 좀 그런 기분이 들어서 계획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언제 음료수라도 하나 들고 갈 것이다. 짐승도 답례를 아니까. 이럴 때 관리인도 불러 차라도 같이 마시는 건 어떨지? 좋은 생각이다. 아까 관리실에 들렀을 때 찻주전자 같은 걸 본 듯도 하다. 수돗가에서 뜬 물을 끓이면 된다. 허름하게 생기긴 했어도 지하수를 쓴다. 그러면 내 컵을 가지고 다녀야겠다. 양철컵. 매달 수 있게 끈을 달고. 차에 고리를 달아야 할 것이다. 어디에 달까? 차는 창고 건물 옆에 대어져 있다. 덮어 놓은 호루도 관리인이 내어 준 것이다. 그도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며 뭘 싣고 오거나 간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대충 그런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이다. 뭘 싣고 오가는지. 불을 보며 앉아 함께 차를 마시면서. 나무가 들어가선지 타는 냄새가 좋다. 다음엔 땔나무를 좀 해올까? 방금 이사야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다. 요옹... 그것이 나를 부르는 소리인 줄을 안다. 그쪽으로 간다. 쥐무덤은 소각장에서 울타리 쪽으로 4보 앞이다. 쥐잡이가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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