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1일 금요일

교정자

모든 것이 너무 많다.
모든 것은 너무 많고 모든 것은 불완전하며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하다.
불완전한 것들을 더 완전한 것들로 만들려는 노력은 시기와 불확실성이라는 제약하에 언제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결국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제약이 고려되지 않는 가장 불필요한 것들뿐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을 손보는 사람, 사람들의 필요와는 상관없이 스스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그러한지 스스로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착란에 빠져버리고 마는 사람. 보통 사람들이 별반 신경 쓰지 않는 정서법 하나하나에 연연하고 위법 사항을 보면 거슬리고 화가 나 견디기 어려운 사람. 언어 법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며, 언어가 있다면 언어 법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보다 차라리 법 기계에 가까운 자. 마감하기 위해 원고를 쓰는 자들의 원고를 마감하기 위해 쓰는 자의 마감을 기다리는 자. 즉 그러한 잡다하게 필요한 불필요의 장인.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다.
나는 산업의 그늘 속에서 존재하고 한 번도 그 그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나의 노동은 흔히 무시된다. 사장에게, 소비자에게, 업계 관계자에게, 학자와 교수에게, 또한 수많은 편집자에게. 나는 편집자로 불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가장 은밀한 단계의 감독자라는 욕망조차 없으며 나는 나의 노동이 포괄적으로 분류되는 것에 모멸감을 느낀다.
나는 온갖 텍스트라는 숱한 소세계들을 교정하고 있으나 사실 세계라는 건 딱히 교정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회의 또한 품고 있다. 하지만 내가 회의한다고 해서 교정되어야 할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교정되어야 할 것이 내 손에 들어오면 나는 그것을 즉시 교정하거나 혹은 이런 식으로 교정될 만한 것이라는 제안을 전달한다. 세계가 딱히 교정될 필요가 있든 없든 내가 교정한 것이 반영되든 안 되든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는 다만 교정할 것이 눈에 들어오면 교정할 뿐이다. 곧 이러한 나의 노동은 넓게 보자면 산업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법과 시선 사이에서 발생한 신경질이 낳은 전기 신호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업무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교정되든 교정되지 않든 사람들은 대개 그 차이와 변화를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이것이 인간이기에 극도로 낮은 빈도로 저지르는 내 실수가 자학에 그치는 이유이다). 말하자면 교정이라는 것은 가시적 효과보다는 비가시적 증강과 관계된 기술이다. 내가 당신의 척추를 접는다면 그것은 교정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이며 혁명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이 자세를 바꾸도록 만들어 점차적으로 척추 원반 탈출증, 다시 말해 디스크를 앓게 만든다면 그것은 교정이다.
나는 교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교정하고 싶기에 당신 또한 교정하고 싶다. 가령 이런 식의 교정 말이다. 내가 교정한 책을 구입하시라.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당신의 서가에 꽂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보기에 좋을 것이다. 어차피 오랜 출판 산업의 역사 속에서 책을 읽기 위해 책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는 근래에 책이 아닌 다른 읽을거리를 찾는 풍조로 인해 나타난 급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19세기 말에 출간된 어느 소설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어차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내 책 또한 벽을 장식하는 데나 사용될 뿐이다.” 세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봐야 뭣하겠는가? 출판 산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탄식만 숱하게 접할 것이다. 그것은 구텐베르크 이후부터 심화되어온 문제이다. 물론 최근에는 어렵다거나 힘들다는 말 대신에 이미 죽었다는 말을 더 많이 쓰기는 한다. 나는 시체가 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 중에서도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자인 셈이다.
그럼에도 시체로서 나는 할 말을 하노니, 당신이 책을 구입하기를 바란다. 이는 나의 사후를 연장시키는 길이니 개인적인 요청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신의 주변을 여러 소세계들로 가득 채우는 일이며, 결국 세계를 좀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시원찮은 벌이를 하면서도 온갖 글들을 교정하는 이유이다. 하찮아 보이는 나의 교정이 세계의 교정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나는 버리지 않고 있다. 어리석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나는 진즉에 자살했을 것이다. ‘이제 세계는 더는 혁명을 통해 변화할 수 없다. 오직 교정될 뿐이다.’ 말하자면 이것이 나의 철학이며 내 노동의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부한다. 정기적으로 책을 구입하기를 바란다. 책이 쓸데없는 것이라면 그 쓸데없는 것들을 당신의 주변에 두길 바란다. 온갖 불완전하고 쓸데없는 것들로 인해 당신의 영혼은 끝내 구원받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나를 믿어도 좋다. 일단 책을 구입한다면 그다음 교정 단계를 내가 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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