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2일 수요일

소리생물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는 빛이 있으라, 라고 한 다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소리도 있으라, 하고 덧붙였다. 번개가 친 다음에야 천둥소리가 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물론 농담이다.

빛은 그 자체로 위대하지만 생명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빛이 생명에 기여하는 바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빛이 생명을 번성케 하고자 하는 의지같은 걸 갖고 있으리라는 착각 또한 금물이다. 손을 들고 질문하고 싶어하는 청중이 보인다. 그렇다면 소리는 살아있습니까? 모든 소리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이따금 그것들 중 죽지 않는 개체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살아있는 소리는 살아있지 않은 빛보다 우월합니까? 이런 건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소리가 어떤 조건에서 불멸성을 획득하는지는 여전히 연구대상이다. 여기서는 소리생물에 대한 논란보다는 지금까지 관찰, 보고된 바만을 다루기로 한다.

죽지 않는 소리는 음의 주광성을 띠고 잽싸게 어두운 곳으로 도망친다. 그 상태에서 일체의 생리활동, 즉 섭취하고 배설하고 활동하고 수면하는 등의 활동 없이 주변에서 완전히 인간이 사라질 때까지 버틴다. 구전된 바에 따르면 30년 된 소리생물이 발생한 장소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더 오래 버틸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소리생물들은 번식의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몹시 희귀하여 동종의 개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소리생물들은 대개 생식능력이 없다. 노새처럼.

소리생물들의 최후에는 사망이라는 말보다 소멸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러나 그들의 소멸은 생물이 아닌 소리들의 방식보다는 작은보호탑해파리나 해삼과 같은 해저생물들의 방식에 가깝다.

소멸 직전의 소리생물들은 인체에 침투하려는 습성이 있다. 약간 성가실 수는 있으나 건강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브루스터(1781-1868)는 소리생물을 관찰하고 잡아 가둘 수 있는 도구를 고안하다가 만화경을 발명했다. 이론적으로 만화경은 소리생물 덫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으나 다른 쓰임새가 더 두드러지는 바람에 만화경kaleidoscope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희랍어에서 아름다움을 뜻하는 칼로스kalos, 형태를 뜻하는 에이도eido에 유리와 거울로 만든 안외 보조도구를 의미하는 어미 스코프scope를 붙인 것이다.

소리생물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19세기에는 이명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만화경을 귀에 대고 자라는 처방을 주는 경우가 흔했고, 실제로 이 처방은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