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9일 토요일

마인어 사전

박물학과는 그다지 관계 없는 일로 모 국가의 K시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모종의 이유로 국가기관 초청을 받아 간 것이기에 정확한 지명을 밝히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계절은 겨울이었고 따라서 우기이기도 했고 우리 일행은 입국 전까지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도심의 거의 모든 빌딩들이 브리즈웨이나 지하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고 컨퍼런스 홀과 우리 일행의 호텔도 그랬기 때문에 업무상의 곤란은 없었지만 둘째날부터 일행 모두가 심한 권태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리는 어메너티와 찻숟가락같은 것을 나누어 걸고 카드게임을 하거나 (나에게서 칫솔을 따간 R이 한사코 돌려주기를 거부해서 결국 프론트에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침대 시트를 활용한 놀이를 고안하거나 하며 시간을 녹였다. 컨퍼런스 홀에서 T를 만난 것은 셋째날의 일이다. T가 관심을 보인 대상은 우리를 거기까지 데려간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행 중 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회교 국가의 공무원과 특별한 관계를 이루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일행은 모두 무척 심심했기 때문에, 가이드를 자처하는 T의 호의를 못 이긴 척 받아들인 것이었다. 만난 날 저녁에는 T의 안내로 현지 식당에 가서 무슨 유명하다는 밀크티를 마셨고 다음 날은 종일 T의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시내와 교외를 구경했다. 조류공원과 폭포와 전통시장과 마천루를 보았고 개인적으로 구입한 기념품 가격을 제외한 모든 비용을 T가 부담했다. 밤에는 K시의 핫스팟이라는 B지구의 화려한 바에서 와인을 마셨다. 거기서 노래하는 남자는 우리 일행의 국적을 묻고는 자기가 미군부대 출신이라는 말을 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T가 값을 치렀다. 회교도인 T는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일행 모두가 취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무렵 T가 우리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우기라도 비는 주로 낮에 내리지 밤은 비교적 잠잠하다 들었는데 그날따라 늦게까지 비가 오고 있었다. 잠에 취한 일행들을 뒷좌석에 몰아넣고 비교적 머리가 맑은 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T에게 간단한 그 나라 말을 배우고 나도 그 말에 대응하는 모국어를 T에게 가르쳐주는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단어교환이 다섯 개쯤 되었을 때 문득 호텔이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대비 때문에 시야가 흐려 잘 알 수는 없지만 차창 밖에 성채같은 빌딩들 대신 공룡같은 야자수들이 점점 빽빽해지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옷을 갈아입고 B지구로 갈 때는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Where are you heading for? T는 잠깐 동안 대답이 없었다. 실제로는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겠지만 자연스러운 대답이 나올 만한 타이밍이 지난 시점부터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뒷좌석의 일행은 야속하게도 깨어날 줄 몰랐다. T가 차를 세운 곳은 웬 밭이 있는 곳이었다. 자라는 작물이나 밭의 구성 같은 것이 내가 알던 것들과는 달랐지만 그것이 밭인 것은 알 수 있었다. 한가운데에 십자 모양 장대가 있고 거기에 허수아비가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고 T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나는 T보다 먼저 내렸다. 열대의, 겨울의, 우기의, 교외의, 이상한 공기 때문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T는 저것을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널 데려왔다고 했다. 저것은 당신 나라 말로 뭐라고 하냐고 물었다. T는 아디크Adik라고 대답했다. 그것을 나의 모국어로는 허수아비라고 부른다고 나도 말했다. 어째서 허수아비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생각하면서. 차의 시동이 다시 걸렸을 때 뒷좌석의 일행 하나가 반쯤 깬 채로 어디냐고 물었다. 거의 다 왔다고 모국어로 말하고, 방금 그녀가 뭐라고 했냐는 T의 물음에는 오늘 고마웠다는 말이라고 답했다. 일행은 다시 잠들었다. 나도 심하게 취했다는 생각을 그때쯤에야 했다. 호텔에 어떻게 돌아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귀국 후에 T에게서 안부 메일을 받았지만 답하지 않았다. 마인어로 Adik는 남동생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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