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읽는 책들이 많다. 이제 읽을 만큼 읽은 책도 있고, 두 번은 안 읽을 것인데 산 책도 있고, 사놓고 안 읽은 책도 물론 있다. 그러나 모두 그냥 폐지로 내놓거나 어디 중고매장에 팔기는 아깝다. 누구라도 한 번이라도 더 읽으면 좋을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면 줄 것이고, 어딘가에 기부할 수 있다면 흔쾌히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집의 넓이에 비해 많은 책이 있으므로 더 받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서로의 책을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최근 1년 사이 우리는 자의로 타의로 하던 일을 그만둔 처지였다. 우리 또래가 다 이런가? 어쩌다 보니 책 근처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친구들. 이 바닥에서도 무슨 셀렙이 나왔다고? 작가는 아니고 평자도 아닌데? 그러나 명의 있음 자체가 암의 있음을 가리키는 법... 뭐라뭐라 줮까는 소리들 주워섬기는 거도 지겹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역시 사업을 펼쳐야 할까?
말하기가 그렇듯 쓰기에도 무작정 아름답고 권할 만한 면모만 있는 게 아니다. 추하고 어두운 면모도 있다. 오해, 몰이해, 교만, 합리화, 낭만화, 평면화, 일반화, 과대화와 과소화, 거짓... 파괴적인, 본래적으로 반존재적인 면모도 있다. 그런 특성들은 남뿐 아니라 쓰는 자신도 해코지할 수 있다. 부지불식간이다. 말은 그래도 어지간하면 앞에 듣는 이가 있다. 쓰기로 말하자면 제일 먼저 읽는 이는 나다. 쓰이는 것이 나의 것이 아닌 줄도 잊은 채 쓰고 만다. 쓰기의 어두운 면모들은 쓰는 이의 서투름이나 악의만으로 발동되는 것이 아니라 쓰기 자체에 포함된 고약한 가능성이고 부작용이다. 글과 세계 사이에는 그 특질상 결코 피할 수 없는 어둠의 불꽃이 있으며, 그 불꽃은 쓰기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경계될 필요가 있다. 인정되어야 하고 가다듬어져야, 통제되고 닦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일테면 ‘한 순간 존재하는 모든 글의 총합’으로서 총텍스트라는 것을 상상해 보자. 문학은 그가운데서 어둠의 불꽃의 캠프였다.
쓰기가 거의 모두의 것으로서 집체통신과 AI에 힘입어 자신의 제대로 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만방에 녹아든 오늘날에 이르러, 쓰기는 자신의 어두운 특성에 집어삼켜지고 있다. 쓰기가 쓰는 이를 집어삼킨다. 써야 하는 것이 있고, 써도 되는 것이 있고, 쓰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을진대... 그 모두의 무차별 뒤섞임 속에 쓰기는 문학화되고 있다. 쓰인 것이란 근본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쓰기와 읽기를 통해서만 소통한다면 우리의 총영혼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이상적으로 들리는 ‘누구나 쓸 수 있다 / 누구나 읽을 수 있다’의, 이 현실 속에서 종합은 ‘누구나 아무나가 아무렇게나 쓴 것을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읽은 다음 부지불식간에 아무렇게나 써서 또 아무에게나 읽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는 고래로부터 문제였다. 특히 종교와 읽기는 역사를 통틀어 떼어놓을 수 없었다. 모두가 아무것이나 읽지 못하도록 교도들이 기울여 온 넓고 깊은 노력을 톺아보면, 오늘날의 상황은 지옥 그 자체다. 그리고 더 더할 말이 없다. 우리의 사업 계획은 이렇다. 진실로 이 세계에 새로운 책을 더하고 싶지 않다면, 이미 충분히 괜찮은 책이 차고 넘치도록 많다면, 책들을 굳이 창고에서 꺼내지 않아도 된다면, 출판사라는 개념을 별로 앞세울 이유도 없다면, 우리에게 적절한 물리적 공간과 집기들이 주어진다면, 바로 그 공간과 집기들로만 지속될 필요도 없다면... 만약 우리의 사업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면, 그러나 우리가 느끼기에 분명히 필요한 사업이라면, 그냥 그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출판사 교환회의 등장이 이와 같다.
처음에는 하루면 될 것이다. 참가자 다섯 명만 모아도 된다. 남 주고 싶은 책을 집에서 가지고 온다. 테이블 다섯 개는 필요하다. 의자도 다섯 개 필요하다. 의자는 더 많아도 좋다. 펴놓고 서로의 책을 읽어 본다. 가져가고 싶은 책은 가져간다. 단, 가져온 책과 가져가는 책의 수량은 같아야 한다. 책을 가져오지 않는 참가자도 있을 수 있다. 대환영이다. 그 참가자가 가져가는 책만큼 집에는 덜 가져가도 된다. 처음에는 한 달 정도의 준비와 홍보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참가자들이 책을 고르고 그 목록을 교환회에 넘긴다. 교환회에서 만드는 책은 전자책이다. 이 페어에 참가하는 모든 책의 목록이다. 그 책이 티켓이다. 사업 목표는 2박 3일 규모가 되는 것. 천막들과 텐트들을 치는 것. 행사명은책 연옥전? 책 윤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