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을 걷다 보면
어디에서 흘러나왔는지 모를
종이 하나를 줍게 돼
별거 아니야
그냥 종이로 된 운명 같은 거야
처음엔 지도인지, 편지인지 알 수 없는데
펼쳐보면 모르는 나라의 젖은 산맥이지
거기 살던 사람들은
수용성 육체인가봐
흔적도 없이 조용해져 있다
나는 주운 것이 마음에 든다
집으로 가져와서
드라이어로 말려보게 돼
마른 종이 위에서 돋아난 얼굴들이
촛불 켜고 외치기 시작하지
우리는 불을 가지고 물속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물속에서도 불을 피우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종이에서 흘러넘친 그들이
나를 둘러싸고 말해
하지만 나는 그대로 항복해버리고 싶고
사실 조용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나한테 얼마든지 그래도 돼
그렇게 무너지면 황홀하잖아
나는 모르는 나라의 젖은 산맥에 올라
서서히, 함부로 미끄러지는 걸 좋아한다
이다음에도 누가 흘린 종이를 보면
또 집으로 가져오고 싶겠지
아니면 물에 잠긴, 풀어진 나라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종이질의,
얇은 인기척을 듣고 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