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8일 금요일

자네, 유령을 아나?



선생의 업무 강도는 높지 않다. 잡무가 많을 뿐이다. 잡무의 연속에서 모든 선생은 자신이 잡무 자체가 되는 걸 깨달으며 교무실에서 아이들의 공책을 뒤적인다. 부모는 알아볼 수 없는 글씨를 선생은 알아볼 것이다. 자신이 뭐라 쓴 건지 모르는 아이들의 글자를 유추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오래 들여다보면 저절로 열리는 글자가 있는 법이다.

첨삭을 하는 것도 잡무에 속한다. 어렵지 않으나 딱히 보람을 느낄 일도 아니다. 가끔 웃기고 가끔 영특한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열 권의 노트를 빠르게 해치우고 다음 공책을 펼친다. 편지 형식의 글을 적으라고 한 적 없는데, 강상준은 보란 듯이 한선생에게, 라고 적은 숙제를 제출했다.

“한선생에게.
나는 상준이야. 자네 유령을 아나?”

아이들의 이상한 화법은 종종 이렇다. ~했습니다, 하다가 바로 했다, 로 변한다거나 선생님, 제가 그랬다요? 꼭 요를 붙여야 존대를 한다고 착각한다거나, “제 동생은 저한테 이것이 제 형이에요.”라고 말한다고 떠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건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

아무튼 유령이라. 나는 유령이라는 단어를 안다. 단어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다.

“니가 요즘 심심하지? 최근에 내가 책을 하나 읽었는데 말이야. 켄터빌 저택에서 유령이 등장하는 이야기야.”

최근에 우리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다뤘었다. 그들은 『캔터빌의 유령』외에도 『행복한 왕자』를 읽었지만 제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동상에서 사파이어를 빼가고 제비가 날아다닌 거, 라고 말을 하자마자 어어? 하며 알아들었다. 그들에게는 저자의 이름이나 책의 제목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 바로 그거.

상준은 캔터빌 저택의 유령이 사라졌다지만, 여전히 다른 차원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이미 사라진 존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1차원과 2차원, 3차원과 4차원에서 계단을 이용하듯이 교차하는데 그건 사라진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등장 방식이라고도 말했다.

“유령은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제일 기쁜데 그렇지 않으면 어떻하겠어? 내입장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더 무섭게 할거야. 온갖 전기를 끊어버린다던가, 물어 뜯으러 다닌다던가, 아니면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믿기지 않을 수 있기에 그는 자신이 본 유령의 모습을 그림으로 첨부한다고 했다. 



































나는 도무지 이들의 서사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믿는다. 저절로 만들어지는 유령도 있는 법이다.

한선생은 밑에다가 굳, 이라는 단어를 적어주고는 빠르게 첨삭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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