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4일 월요일

면피

선생님, 버섯이 자라기 시작했어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원인을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원흉은 우리가 함께 만든 테라리움이었다. 테라리움 만들기는 조수에게 한 지역의 식생을 이해시키기 위한 실습 활동이었고, 재료로는 물론 한 지역에서 구한 흙과 물과 이끼만을 썼다. 우리가 사용한 이끼가 버섯 균으로 ‘오염’되어 있었고, 거기에 끼어 있던 버섯 균이 다른 화분에 옮겨붙은 것이었다. 정작 우리의 테라리움 안에서는 버섯이 자라지 않았다. 문제의 이끼를 그대로 넣어두었음에도. 외부 대기를 거의 차단하여 자체적인 기후 체계를 갖게 된 테라리움 내부에서는 자라기에 충분한 습도나 영양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라리움 내부에서 버섯이 자라기 시작하면 그 안의 작은 식생이 틀어지고 말 것이다.

각설하고 실제로 자라난 버섯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첫째 날, 버섯은 희고 둥근 형태로 화분 테두리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조수는 바로 그날 버섯을 발견했다. 테라리움을 만든 이후부터 조수는 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테라리움 바로 곁에 있는 커다란 화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모르고 넘어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며칠은 그대로 두고 보자고 했다. 조수는 동의했다. 둘째 날 화분 위로 조금 더 솟아난 버섯은 한쪽 모서리가 특이하게 긴 삼각뿔 모양이 되었다. 한쪽 단면에서 작고 둥근 흠집 같은 것이 한 쌍 발견되었다. 강낭콩 모양에 대칭을 이루고 있는 흠집이었다. 그래서…… 이건 마치 사람의 코 같네요. 조수가 말했다.

그러므로 셋째 날과 넷째 날, 그 이후에 일어났을 일을 이제 당신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광대와 눈썹뼈, 입술과 턱이 천천히 화분 밖으로 밀려 올라왔다. 버섯이 자람에 따라 화분의 원래 주인이었던 식물은 (박물학과는 별개로 그저 재미로 기르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파내 다른 화분으로 옮겨 주어야 했다. 버섯은 다섯째 날쯤에 완전히 사람의 얼굴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형태로 자라났는데, 특유의 창백한 빛깔 때문에 밀랍으로 만든 데스마스크처럼 보였다.

여섯째 날에 버섯은 눈을 떴다. 눈동자도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밀랍 색이어서 눈 뜸과 감음의 차이는 크지 않았으나, 어쨌든 눈꺼풀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움직인 것이 눈꺼풀만은 아니었다. 버섯의 입술이 열렸다. 마침내, 라고 해야 할까.

종말이다.

버섯은 그렇게 말했다.
이러한 생물군이 있다. 그것이 지니고 있는 실질적인 지혜나 신성력 같은 것과는 별 상관 없이, 인간-또는 숙주에게 부정적인 암시를 주어 파괴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생물들이. 그중 몇몇은 영향받은 인간이 벌이는 행위를 통해 먹이를 얻거나 번식을 하거나 더 나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등의 이로움을 꾀하지만, 그 나머지 대부분은 자기의 생존과 아무 상관 없는 이유에서 인간에게 그런 암시를 준다. 그렇다면 그것은 유희인가? 오락인가?

버섯이 인간의 얼굴 모양으로 자라는 것은 기이한 일인 한편 그다지 의미부여를 할 만한 일은 못 된다. 우리가 테라리움을 만들기로 한 것, 우리가 박물학자와 조수인 것, 우리가 각각 박물학자와 조수가 되기까지의 시간, 총체적으로, 우리가 우리인 것과 버섯이 사람 얼굴 모양인 것은 서로 개연되지 않는 무작위의 사실이다. 물론 버섯이 하는 말도 그러하다.

버섯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떠오르는데, 그중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버섯이 귀까지 자라도록 내버려둔 다음 (아마 여덟째 날 정도면 귓바퀴가 완전히 흙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귓구멍에 대고 엿이나 처먹으라고 말한 다음 화분째로 불사르는 것이다. 조수는 이 버섯을 보존하기 위한 새로운 테라리움을 마련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는데, 화분에서 솟아난 사람 얼굴을 찢어지지 않게 뜯어낼 수 있다면 그러라고 했다. 아마도 여덟째 날에 조수는 내 판단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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