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8일 월요일

포도나무

그것은 썩고 있다. 그것은 내 생각 속의 밭에 있다. 그것은 썩어서 거름이 된다. 그것은 거름이 되어 식물의 생장을 돕는다. 그것은 다 큰 과일나무의 밑에 있다. 그것은 모여 있지 않고 드넓게 헤쳐져 있다. 한 사람이 다가와 그것을 삽으로 옮긴다. 그것의 생김새는 흙과 유사하지만 흙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삽으로 파낼 수 있다. 그것이 말한다. “나는 썩고 있었어. 저 밑에서, 저 밑에서. 이제는 어떤 사람이 삽으로 나를 파내는군. 파내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작정이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파고 있는 사람이 말한다. “난 널 파내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거야. 넌 내 생각을 아는군.” 그것은 흙과 유사하지만 말을 할 줄 알고 생각도 한다. 내 생각 속의 다 큰 과일나무 아래에서 그것은 말한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숨을 내뱉는다. 그것이 내뱉는 숨은 다시 거름이 되어 식물의 생장을 돕는다. 작은 새끼 멧돼지 하나가 다가와 그것 위에 있는 작은 풀을 뜯는다. “먹지 마!” 그것이 말한다. “그거 내가 키운 거야.” 그것이 소리친다. 소리치다가 두 발로 선다. 그것의 몸체가 일어나 멧돼지를 쫓는다. 멧돼지가 도망간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생각 속의 밭에 있는 다 큰 과일나무에서 과일 하나가 떨어진다. 그것은 포도이다. 다 큰 과일나무는 포도나무이다. 그것은 포도를 먹는다. 포도를 한 알 먹을 때마다 그것은 씨를 뱉는다. 그것은 씨를 먹지 않는다. 사람들 중에서도 포도의 씨를 먹는 사람과 먹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처럼. 그것은 흙과 유사하지만 말과 생각을 할 줄 알고 사람처럼 포도를 먹을 때마다 씨를 토해낸다. 그것이 내뱉는 씨는 땅에서 자라나 다시 포도나무 묘목이 되고 다 큰 나무로 생장한다. 그것은 농부인가? 그것과 사람들, 농부들은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썩고 있다. 그것은 내 생각 속의 밭에 있고 썩어서 거름이 된다. 그것은 두 발로 일어설 줄 알고, 멧돼지를 쫓는다. 자신이 먹여 키운 식물을 지키기 위해. “먹지 마!” 그것이 말한다. 그것이 키운 식물을 망치는 것은 그것이 싫어하는 일이다. 마치 농부들처럼.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지키려는 것을 두 발로 일어서면서까지 지킬 줄 안다. 마치 사람들처럼. 그리고 그것은 삽으로 파내어서 조금씩 옮길 수 있다. 마치 흙처럼. 그것이 말한다. “귀찮아! 날 옮기지 마.” 귀찮아하는 그것은 농부들과, 사람들과, 흙과는 다르다. 그것은 다 큰 과일나무의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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