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7일 수요일

서가행

어제 온종일, 편집 오류가 난 도서의 박스와 랩핑을 뜯고 1권과 2권을 따로 분류해 파렛트(표준어는 ‘팰릿’)에 쌓는 노역에 차출됐다. 오늘 나의 상태는 영 좋지 않다. 허리도 안 펴지고 문장도 잘 안 만들어지고... 그렇다고 쉴 수는 없는데, 이미 화요 연재에서 수요 연재로 한 번 밀었기 때문이다. 경험에 의하면 아주 가볍게 쓰고 말거나 나중에 고치는 한이 있더라도 속도를 유지하는 편이 좋다. 곡물창고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연재의 세 고비: 소개(기획)를 작성할 수 있는가? 소개 작성 후 세 편을 쓸 수 있는가? 어떤 식으로든 완결을 낼 수 있는가? 이렇게 생각해 본다. 내용이 아닌 발행 형식으로 텍스트를 분류하여 ‘연재물’이라는 갈래를 본다면, 이 장르는 등장한 지 30년쯤 된 전자지면-네트워크 단말기라는 매체에 실려 내용 불문 폭발적으로 부흥 중이며, 그 자신의 압도적인 양을 통해 전체 문자 문화를 주도하고(또는 파묻어 버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때 출판은 발행과 점점 구분되고(구분되지 않고), 서가와는 거의 구분할 수 없이 가까워진다(서가를 해체해 버린다). 말인즉슨 우리는 서가를 빼놓고서 출판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출판은 다른 무엇보다 서가라는 구성체의 구성물을 제작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 제한된 규모의 삶만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있는 개돼지들에게까지 무차별 보급되어야 한다고 믿어지는 듯한 ‘물리 서재’에 상대하여, 한 인간만의 서가란 날이 갈수록 더 엄청나고 대단한 낭비 사치로 느껴지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지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널리 퍼지고 있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값비싼 책을 파는 것으로 유명할 출판사 ‘서가행’이 내세우는 굿즈는 여러 색과 사이즈의 책장이다. 동종 계열 후보로 꼽힌 ‘책시렁’은 이미 존재.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