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일 화요일

파산사

다음의 여섯 글자,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입에 담기에 아주 신물이 난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지겹고 메스껍고 돌아버릴 것 같고... 하여튼 그냥 빨리 좀 끝났으면 좋겠다. 도대체 언제쯤? 그런데 만약에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그것이 무엇인지 묘사해야 하는 독배가 내게 주어진다면, 피할 수 없이 나는 우리-무산계급의 견지에서 입을 열게 될 것이다. 이 자본주의 사회의 무산계급으로서 체감하는 인간의 삶이란? 그것은 이름처럼 돈으로 돈을 만드는 삶(자본화)이라기보다는 다만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빚 갚기 그뿐이다. 사태에 맞게 말하자면 이것은 부채주의 사회의 부채주의 삶이다. 그야말로 인간사의 거의 모든 일이 부채를 통해서만(아주 부드럽게, ‘신용’이라는 우스꽝스런 단어로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이루어진다. 비유가 아니다. 빚을 내서 살고, 빚을 내는 것이 삶이다. 빚을 내서 일을 구하고, 빚을 갚기 위해 임금을 받는다. 무슨 대단한, 문자 그대로 죽음에 달하는 악전고투로 염병할 평균 월수를 아무리 올린다 하더라도 부채를 갚아 나가야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의 사회 상태에서는 그 어떤 좋은 것이라도 부채를 통하지 않고서는 점유할 수 없기 때문이며, 월수에 알맞은 ‘더 좋은 것’이 반드시 준비되어 턱밑까지 들이밀어지기 때문이다. 하여튼 살아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빚을 내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정확히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어떤 종류의 일을 해야만 한다는 집단적 믿음(망상?)과, 그 증거인 듯한 추상적 기호(숫자)와, 그것들이 초래하는 병적 상태에 젖어가고 있다. ‘스스로를 서민이라고 여기는 중상계층의 한심한 자의식’이란 전형 역시 더 언급하기 짜증스러울 정도지만, 그 전형은 다만 다른 스케일로, 모두에게서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월수의 피라밋 층층과 노동 양태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들에게 저마다의 사악함이 있다’는 정도의 뜻이 아니다. 그 개개인들의 모임들이, 구멍가게에서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주민센터에서부터 전 세계로까지... 반복되며 개개인들뿐 아니라 사회-자신들까지도 부채 존재라는 동일한 상태로 나라시 쳐버려~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우리는 이미 이 사태를 직관 수준에서 익히고 있다. 모든 것이 금액으로 측량되는 현상태에서 사회적 존재들의 생존은 부채라는 양식에 반드시 붙들려 있다. 즉, 얼른 느끼기에 우리가 빚을 갚기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하게는 언제나 딱 빚을 갚을 수 있을 만큼의 임금만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촘촘한 무엇을 넘어서 우리가 딛고 선 물질계 그 자체인 이 프랙털 어쩌고...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나의 모든 빚을 청산하고도 주체할 수 없는 돈!)는 것은 억세게 운수 좋은 이야기, 기적 같은 이야기, 종교적 체험에 가까운 이야기로 들린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적 체험에 대한 뻔뻔하고도 암묵적인 간증과 전승이 오늘날 (공교육과 대비됨으로써 존재하는) 사적교육의 요체가 아닌가? 인간으로서 돈을 더 만들 생각이 없니? 그것은 다만 부채의 80년 행진이란다! 만약 빚을 갚고도 나머지가 생긴다면 그 돈은 돈을 만드는 돈 속에 바쳐야만 하는 거야, 돈은 모으면 모을수록 그로부터 돈을 만들기 쉬우니까, 그래야만 결국에 빚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 바침이 모두의 부채감을 유지시키고 있는 지옥에서의 약속이다. 빚이 싫다면 무조건, 약한 것부터 강한 것까지 어떤 종류의 도박을 하거나... 아니면 한마디로... 세계는 우리에게 자살을 권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다채로운 정신병의 생산라인이며, 이곳이 바로 죽은 악인들의 유산 그 자체다. 내가 너무 흥분했나? 이보다 더 침착하게 객관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또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식의 세계가 부채 위에 부채를 더해감에 따라 반드시 질적 변화(자본주의의 끝)를 맞이하리라 보는데, 그 변화는 아마도, 내 생각에는, 빚으로부터의 해방 같은 것이 아니라,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종류의 채권자가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를 말하는 거야? 돌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우리다. 이러한 상황을 따라, ‘파산사’라는 사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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