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2일 월요일

전화

전화가 울리는데 아무도 그것을 받지 않는다. 휴대폰에서 울리는 전화다. 누군가 호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그곳에는 휴대폰이 없다. 그 사람은 고개를 들어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방향을 쳐다본다. 그 사람은 가만히 있다. 도통 전화벨이 울리는 호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지 않는다. 잠시 끊겼던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 대화란 누군가가 사업상의 용무로 사무실을 차렸는데 아직 고용한 인원이 얼마 없어 사무실의 절반가량이 빈자리이고, 그래서 휑뎅그렁하다는 것이다. 누군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도 전화는 울리고 있다(아까 끊어졌다가 다시 울리는 모양이다). 이제 누구의 전화가 울리는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전화의 주인은 윌리엄스다. 그는 중절모에 실크 재질의 스카프를 두르고 검은 선글라스를 꼈다. 그는 전화벨이 울리는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어서 휴대폰 말고 손수건을 꺼낸다. 그러고 보니 실내에는 꽤 덥고 후텁지근한 공기가 흐른다. 그는 꺼낸 손수건으로 땀이 나 반들반들한 자신의 이마를 닦는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인원들이 흐릿한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마침내 그, 윌리엄스는 울리는 전화를 받는다. 손동작이 꽤 신속한 것이, 마치 그렇게 되기를 기다린 듯하다. 전화의 내용은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아직도 사무실의 절반가량이 빈자리인데, 혹시 여기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아까 대화 자리에서 나왔던 이야기인데.’ 윌리엄스는 생각했다. 그는 아까 대화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층계참에서 이 전화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아까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처럼 나머지 사람들이 연기로 화해 실내에 혼자 남게 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사무실에서 일해 보지 않겠냐는 전화의 제안은 꽤 괜찮은 것이었다. 아까 그 대화 자리에서도 그는 그 대화를 잠시 멈추고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려다가 말았다. 그가 그러한 의견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실내에서는 덥고 탁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고, 그는 즉석에서 성냥개비들을 몇 개 들고 테이블에 놓으면서 모양을 만들었다. 그것은 그가 하는 오래된 장난 같은 것이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손수건으로 다시 땀이 난 자신의 이마를 닦으며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테너, 모리아스, 이나벨, 데니얼... 그리고 바로 나. 자신. 윌리엄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자신도 연기로 화해 사라졌고 실내에는 벨 소리가 울리는 휴대폰만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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