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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0일 화요일

시의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시


 나는 새 우주론을 위한 시적 사고실험이다. 


 ‘하고 싶은 말’은 ‘가능성’이기에 ‘있을 수 있음’이니, 그러므로 빛의 입자이다. ‘해야 하는 말’은 ‘필연성’이기에 ‘없을 수 없음’이니, 그러므로 어둠의 파동이다. ‘해서는 안 될 말’은 ‘불가능성’이기에 ‘있을 수 없음’이니, 그러므로 어둠의 입자도 파동도 아니다. ‘말해지지 못할 말’은 ‘우연성’이기에 ‘없을 수 있음’이니, 그러므로 빛의 입자이자 파동이다. 


 언어의 사방세계에서, 광대무변한 우주 한가운데에서 시는 언어의 부르심을 수신한다. 자유낙하하는 영감은 플라스마 상태를 벗어나 모국어의 옹알이로 상전이된다. 빛의 시상은 영겁을 건너와 마음의 우주로 날아든다. 암흑의 우주상수는 운율의 타원 궤도를 조율한다. 퀘이사의 제트기류는 시어들과 사어들을 무작위로 뱉어낸다. 대폭발의 시작법은 에테르의 이미지와 플라스마의 반이미지를 경유한다. 서정시의 안개상자 속에서 절대영도로 굳어버린 실패한 압운들의 잔해를 통과한다. 인간적인 주제는 유성우가 쏟아지는 행과 행 사이의 우주항로로 나아간다. 얼음 고리가 길을 안내하는 연과 연 사이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사건의 근일점에 다가갈수록 휘어져가는 비유는 구상성단의 무한수열적 미궁으로 성변화한다. 광기의 태양풍에 휩쓸린 독자는 복선을 헤매다가 뇌사한다. 양자확률의 시적 함수는 시인의 절망으로 붕괴되어 말의 참뜻을 해체한다. 슈뢰딩거의 키메라가 플레어를 뿜어대며 쫓아온다. 계시록의 옛 뱀 곧 용이 전자기펄스를 발산하며 쫓아온다. 시의 빛에너지는 원형의 이미지로 은하계의 핵에 보존된다. 각 나라의 언어는 불가능한 도형의 측지선으로 이어진다. 외계어는 우주복사에 인봉되어 저세상에서부터 임해오는 말씀인가. 우주복 입은 시인은 예언자의 제의를 믿음도 의심도 없이 확률적으로 시험한다. 


 우주선의 심장부에 자리한 기계장치의 신의 전원을 켠다. 모스부호는 우주에서 바라본 빛바랜 지구의 풍경을 묘사한 초고를 완성한다. 시작품과 독자는 백지의 멋진 사건지평선 꼭대기와 바닥에서 기묘한 포즈로 랑데부한다. 그 결과에 따라 시는 잿더미가 될 수도, 핵무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 시의 곡률이 무한해지자 사랑의 원관념은 모순율에 덜미 잡힌다. 시의 질량은 우주먼지를 그러모아 덩치를 키운다. 천상의 유리바다에서 낭송되는 한 편의 시와 지옥의 최하층의 지하서고에 파묻힌 보편의 시. 양자는 양자적으로 얽힌 채 서로를 부정하며 긍정하고, 부정을 부정하는 식으로 긍정을 긍정한다. 초대칭짝인 형태소와 소립자는 물질과 반물질의, 현실과 가상의, 상징과 실재의 경계를 시적 요동으로 들끓게 한다. 특이점은 지구의 모든 사건을 관찰하며 동시에 새롭게 기술한다. 미래의 광원이 될 재목에게 중력파에 실린 고통을 부여한다. 그는 악몽의 미친 사탕발림으로 단련된 뒤 정금이 된다. 시의 제목은 무지갯빛에 물들어 최후의 한밤에서야 참된 빛을 발한다. 현실의 총체는 시와 일체를 이뤄 망현실을 탐험할 최후의 우주선을 건조한다. 시가 파괴하고 재건한 소우주는 대우주를 겨냥한 구원방주의 발사대다. 함께 외치는 목소리는 대기권을 벗어난 채 자유하다. 눈빛은 아직 지구에 당도하지 않은 달나라의 휘영청한 별빛을 꿰뚫는다. 불은 불쏘시개를 끌어당기고, 사랑은 사람을 끌어당기고, 별은 별자리를 끌어당기고, 중력은 종말을 끌어당긴다. 


 우주는 유년의 추억에서 영년의 추상으로 가속 팽창한다. 조이스의 평평한 섬우주에서 벗어난 쿼크는 우주의 만국공용어다. 쿼크는 자신의 색상과 위상에서 벗어나 강력해진다. 쿼크 속의 쿼크들을 구분할 수 없다. 양자장의 뼈대 위에다가 망현실의 살가죽을 덧씌운다. 혈액의 힘이 원자핵을 순환하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에 동일한 세계관을 건설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자장까지도 양자장에 구속되어 있다.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악력을 통합한 망력의 역선은 모두를 잇고, 읽고, 있게, 한다. 시는 무작위로 정렬되고 무위로 배열된다. 환망공상의 뇌줄기로 이루어진 망현실 속에서 숨겨진 고차원이 풀려나온다. 입자에서 고리로, 고리에서 매듭으로, 매듭에서 장과 막으로, 장막에서 텍스트로, 텍스트에서 흐름으로 흘러간다. 텍스트를 구성하는 가로축의 자음과 세로축의 모음 사이로 기표와 음표가, 쉼표와 숨표가 떠다닌다. 누군가 빈칸의 운율로 공백의 텍스트를 읽는다. 이야기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식물인간에서 초인에 이르기까지 생명력의 리듬은 다양하게 천지사방으로 발현된다. 인간은 동일한 울림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는 필멸자다. 전자의 궤도에서부터 태양의 궤도에 이르기까지 상징은 총체적으로 순환하며 새로움의 영토를 확장한다. 


 사건지평선을 건너기 직전 뒤에 남겨질, (동시에) 앞서 떠나갈, 연인의 눈을 바라보며 눈빛을 보낼 그 순간을 떠올려보라. 그 눈빛에 담아낼 최후의 메시지는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그 메시지에 존재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겠는가? 전 존재자들을 살리기 위해 완전하게 죽어야만 할 하나의 존재자의 희생은 어떠한 시로 포현할 수 있겠는가? 지평선 너머의 실재에 도달했을 때에도 사랑하는 이를 잊지 않기 위하여 존재자들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타자에게 가닿은 눈빛은 영원히 그의 영혼을 공전한다. 눈빛을 조심하라. 무심결에 영안을 빛내지 않으려거든 자기 자신을 거꾸로 자전해야 하리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눈빛이 평행우주를 건너 내게 당도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 눈빛에 담긴 악의 잠언에 꿰뚫려 나의 부모이자 동시에 나의 자식인 그 누군가가 즉사할지도 모를지니. 그러니 유언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존재는 오롯이 참되다. 그는 모든 걸 이루었나니 언제라도 그가 원할 때 죽음을 초월할 수 있으리라. 


 한때 나였던 모든 존재가 내게 다가와 내 몫이 아닌 생사화복을 내어달라 속삭인다. 나는 반우주의 메아리로 산화하려 한다. 힉스장에서 상호작용하는 표준모형의 입자들과 아수라장에서 용호상박하는 서사시의 문자들. 전자와 문자 속에서 자음의 양성자와 모음의 중성자가 지휘하는 쿼크들과 렙톤들의 하모니가 울려 퍼진다. 원시우주의 우주론적 적색편이를 건너온 시의 중력파는 제 사명을 망각한다. 끝 간 데에서 만나야 할 인연이 늘어간다. 인간성을 버린 날로부터 세계와 대적할 인간의 시적 저항은 시작될 것이다. 시를 쓰는 행위란 세상의 모든 시를 태워버리는 과업이어야 하리라. 시는 암시된 반물질의 중력파로 영혼에 질감을 부여한다. 초끈의 혈관을 순환하는 광자의 시적 상징들이 세계면을 뒤덮자 망현실이 펼쳐진다. 심상의 픽셀이 산산조각 나자 빛이 산란하며 에너지를 교란한다. 플랑크 시간 동안 쓰인 시는 플랑크 길이에 불과한 영혼을 뒤흔들 뿐, 거시세계를 뒤흔들지 못한다. 


 그리하여 어느 날, 시는 이상향을 축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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