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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9일 금요일

굴속으로: 이나테

나는 굴속으로 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와 관계없이, 나는 굴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떠올려 보면, 나는 아마도 길에 떨어진 바나나를 밟고 넘어졌던 모양이었다. 길에서 넘어진 게 어떻게 굴속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이어졌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다 떨어지고 나면 나도 그녀*처럼 키가 작아지는 약, 키가 커지는 약을 먹고 작은 문, 큰 문으로 들어가서 여왕의 명령으로 경황이 없는 토끼를 만날 수 있을 법했다. 구덩이로 떨어지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ㅡ약 2분 30초 이상ㅡ 떨어지고 나서도 왠지 내 몸이 멀쩡하게 남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점점 더 들게 되었다. ㅡ이건 이야기 속의 일이야!ㅡ 이제 어느 정도 ㅡ2분 40초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ㅡ 구덩이 속 환상 세계에 적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점점 더 들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언제 다 떨어지는 거람. 나는 나를 관조하는 듯한 자세로 떨어지고 있는 부분을 뒤틀어서 다른 쪽으로 떨어져 보거나, 아니면 또 다른 쪽으로 떨어져 보거나 하는 일을 계속했다. 이제 겨우 3분 20초 정도 경과했을 무렵이었지만 나는 내 추락이 사실은 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성층권에서 떨어져도 이 이상은 시간이 경과하지 않을 텐데.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고 저 밑에는 불빛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지금 스쳐 지나가고 있는 ㅡ굴속의 내벽 등ㅡ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구멍의 크기는 반지름이 약 3~5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나는 떨어지고 있으면서 한쪽 벽으로 몸을 돌려가며 도달하고자 했다. 공중에서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 무력해서 무슨 짓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황한 채로 시간을 세지 않고 넘겨버렸던 초반의 1분대 정도를 제외하고, 나는 계속 머릿속으로 시간 초를 세고 있었다. 그러는 것이 이 점점 더 떨어지고 있기만 하는 상황에 적응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적응이라기보다는 남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봐, 난 아주 끝나지 않는 구덩이에 떨어져 봤다구! 꼭 그녀처럼 말이야. 나는 숫자를 세고 있으면서 이 추락이 10분 정도를 넘기면 그야말로 끝나지 않는 추락이 아닌지를 걱정해야만 하는 처지라고 생각했다. 끝나지 않는 추락에서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더군다나 평소와 같이 지상에 두 다리를 내린 것도 아니라서 몸을 움직이는 데에도 제약이 있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저 지하에 환상세계가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떨어지고 있는 일은 잠시 적응이 된 것 같으나, 떨어지고 난 후에 몸이 다치는 일을 제해놓고 있더라도 지하에 아무 것도 없으면 그건 그것대로 공포였다. 그래서 나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무엇이 있는지 손가락으로 건드려봤다. ㅡ핸드폰이 있었다ㅡ 나는 핸드폰을 꺼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신호가 터지는지 보았다. 신호가 터지지 않았다. 만일 신호가 터졌다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나 지금 떨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 없이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떨어지고 있는 일이 점점 더 ㅡ6분대에 가까워졌다ㅡ 길어지기만 하면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가령 핸드폰이 안 터지는 일은 ㅡ이때 난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어둔 채였다ㅡ 이러한 떨어지고 있다는 이상 사태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게다가 바람이 으슬으슬하게 느껴졌다. 떨어지고 있으니까 나는 물론 강한 맞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런데 떨어지고 있는 초반에는 이 바람이 그렇게 의식이 되지는 않는 듯했다. 그런데 점점 더 시간이 지나며 몸이 춥게 느껴진 것이다. 이대로 계속 있다간 나는 떨어져 죽기 전에 동사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마냥 떨어지고 있는 일이 계속되면서 ㅡ약 7분 40초 정도가 지났다ㅡ 내 안의 두려움도 점점 더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냥 떨어지고 있는 시간이 긴 것 같아서 적응이 ㅡ추락 후에도 몸이 멀쩡할 거란ㅡ 되었던 것 같은데 아니, 이건 아니었다. 게다가 몸도 너무 춥고. 나는 한 손을 들어 핸드폰이 있는 주머니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몸의 자세를 바꿔 핸드폰이 안 떨어지도록 하는 쪽으로 몸을 돌려갔다. 이젠 정말 춥기만 하고, 이게 다 무슨 일인 건지에 대한 걱정만 들었다. 그 후로도 나는 ㅡ이리저리 떨어지는 자세를 바꾸거나 할 뿐이었지만ㅡ 마음을 달래려고 별짓을 다 했다. 떨어지고 있으면서 나는 점점 더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점점 더 무서워졌다. 아, 그건 그렇고 내 이름은 이나테이다. 수다하길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듣는 사람이 없는 와중에 자기 소개를 했다.



*앨리스

2020년 10월 6일 화요일

소개: 미아와 접시

미아

너는 모자를 쓰고 있다. 너는 장난을 한다. 너는 뭔가를 이룩하고자 한다. 너는 추동된다. 너는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다. 너는 쫓아간다. 너는 가는 길에 장난을 한다. 나처럼. 너는 길게 이어지는 장난을 한다. 너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는다. 너는 쫓아가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 너는 비 오는 하늘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쓴다. 너는 미아다. 너는 길을 잃은 사람이다. 너는 더 이상 힘도 없을 때까지 달린다. 너는 바보 같은 난쟁이이며 드높임이다. 너는 말을 한다. 너는 기다림이다. 너는 언제나 웃고 있는 사람이다. 너는 길에서 물건을 줍는다. 너는 그것을 잠시 바라본다. 너는 야구공을 갖고 있다. 너는 그것을 던진다. 너는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일 뿐이다. 너는 벗어 놓았던 모자를 다시 쓴다. 너는 기다림이 끝났다고 말한다. 너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너는 손가락으로 빈 공중에 글씨를 쓴다. 너는 비가 오는 거리를 걷는다. 너는 다 끝났다고 말한다.

접시

그때 너는 접시를 떨어뜨리곤 곤란한 얼굴로 이쪽을 봤어. 그것이 네 접시였는지 혹은 내 접시였는지 구별은 필요치 않았어. 단지 접시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있었다는 사실. 착각하지 말라던 네 말이 떠올랐어. 그때 너는 접시를 하나 더ㅡ일부러라는 것 같아ㅡ 떨어뜨렸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이 된 것처럼 너는 접시를 떨어뜨릴 때 거실의 커튼에 휩싸여 있었단다. 그렇게 일부러 떨어뜨려 놓고서도 너는 이쪽을 봤지.
할 말이 없었어. 그저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사실. 그것이 네 접시였는지 내 접시였는지 몰라.


*<미아와 접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글이 올라오는 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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