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6일 목요일

박물지 서문

박물은 얇아서 박물. 많아서 박물.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백과사전에 없는 말을 찾으면 어지러워졌다. 어지러워지는 게 좋아서 자꾸 모르는 것을 생각해냈다. 질문 있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 늘 같은 말로 대답한다. 제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겠는데요.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을. 옳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견을. <사실>도 아닌 <의견>을. 좋은 것은 좋아서. 싫은 것은 싫어서. 재미있는 것을 상상하고는, 그게 실재하지 않는 게 아까워서 사실인 척 끼워넣기도 할 거다.

자의적으로 작동하는 책임 의식과 그럴싸하게 반짝거리는 모조 과학으로, 씁니다, 박물지,

그건 아마 멸절당한 족속의 윤리일 거야―박물학자라는 작자들 말입니다. 어차피 내가 아는 박물학자들은 다 죽었으니까 너 같은 건 박물학자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도 이제 없다. 정말 근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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