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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4일 금요일

우리 아이 창의력 교육 제6장


H는 소식을 전해 들은 오후부터 시작과 종료의 시기를 알 수 없는 사건의 후일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상상 속에서 사건은 이미 시작됐거나 영원히 시작되지 않기도 했다. 어떤 경우를 고려하더라도 지금쯤은 분명히, 라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는 시간을 지날 때, J와 잠깐 마주치게 되어 본격적인 대화를 시도해볼까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H에게는 J에게 전할 특정한 화제가 있었고 그건 둘이 공유하던 오랜 고민의 결말이었기 때문에 말을 걸어 이야기를 시작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적절한 타이밍이었고 내용도 충분했다. 대화에 임하는 어투도 쉽게 상상되었다. 좋아하는 J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면 내용과 상관없이 만족감을 느낄 터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던 건, 오후부터 내내 계속된,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상상이 끊기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한 번 끊긴 후 보류된 고통과 함께 다시 시작되는 상상은 흐름이 끊기지 않은 경우보다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그는 흐름을 끊을 만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흐름을 효과적으로 끊을 수 있는 타인과의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 대신 H는 혼자, 작업 중이던 일에 집중하여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다. 상상에서 적당히 빠져나오기. 빠져나온 만큼의 몸으로 성과를 내어 방어벽을 쌓기. 고통의 순간에도 쌓아 올린 방어벽으로 이후의 고통에 대비하기. 공포에 대비해야 한다는 공포를 피할 수 없는 사람은 적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투사가 된다. 익숙하게 싸우면서, 사건에 선행되고 따라오는 모든 감정을 예측하면서, 소식을 접한 당시 충격의 강도 이상으로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장소와, 참여자와, 현장에 구비된 물체와, 여러 인과관계를 파악하여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에 대한 상상이 멈추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 이상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이 과정에 막힘이 없었던 어떤 날들에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진맥진한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가끔 꿈에서는 더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곳에서, 상상도 못했던 장면들이 H의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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