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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5일 화요일

생화가 있는 집

“그들은 그들의 가슴을 열고 여네
그들이 심장 하나를 찾을 때까지
그리고 그 심장 안에서 도둑맞은 장미를 찾을 때까지”

― 바스코 포파,  「장미도둑」



떨어진 장미의 머리를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는 걸, 그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런 문장을 떠올리면서 장미를 바라본다. 꽃을 정기구독하면 어떤 꽃이 올지 모르고 기다리게 된다. 이번에는 미니 장미의 차례였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의 한 장면처럼, 삶이 피어나는 순간처럼, 일상의 한 부분을 보며 속으로 위태로운 내레이션을 까는 것을 여전히 즐기고 있다.



어릴 때 장미 농원에서 살았다. 최상급의 장미는 사람의 키와 견줄 만큼 큰 편이다. 실제로는 접하기 어려운 상품이라 보통 만나기 어렵다는 것, 더운 여름철 팔 토시를 한 엄마와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보기 좋다는 것, 개가 언덕을 뛰어다니고 꿩이 짖는 곳에 화원이 있다는 것,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자랐을 수 있었겠지. 



비닐하우스의 습도가 기억난다. 거머리를 보던 기억, 비가 온 후, 살이 통통하게 오른 뱀이 몸을 둘둘 말고 쉬는 풍경, 흙냄새와 산의 어둠과 밝음에서 자란 기억. 특별한 삶일까? “그랬구나. 그래서 네가 그런 시를 썼구나?” 선생님의 말에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는 건, 비밀로 해두자. 서늘한 꽃 냉장고에 들어가서 쉬다가 엎어져 장미를 쏟아버린 어린 시절이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종종 개와 함께 번갈아 들어가 장미의 향을 맡고, 몸을 식히고 나오고는 했다.)



엄마의 통통한 손은 온통 가시로 긁혀 자잘한 딱지가 많았다. 한 채의 비닐하우스가 쉽게 타버리기도 했다. 상품 가치가 없는 장미의 잎을 뜯으며 좋지, 싫지, 말하며 개랑 놀기도 했다. 비질을 할 때 쓰레기가 아닌 잎을 모았다. 버스가 없어 길을 걸으며 기도하던 밤은 기억하지 않기로 한다. 뙤약볕, 대추나무, 반정도 눌린 짐승의 사체...... 



아무튼 그 당시 내게 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어디선가 쏟아져 나오듯이, 언제나 주변에 존재하는 것. 저 혀를 내밀고 나와 놀고 싶어 웃고 있는 개를 향해 뿌려줄 수 있는 것, 그 개의 이름이 장군이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않기로 한다. 장군이는 잘생겼고 남의 집 마당에 들어가 닭을 물어뜯어 긴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종자개 역할을 했고.



며칠 전 화훼농장 돕기 일환으로 생화를 산 뒤 생화가 있는 집은 더욱 어색하게 느껴졌다. 집에는 꽃이 있던 기억이 없다. 사방이 꽃이니까 굳이 유리병에 넣어 장식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낀 것도 그러했다. 어디에나 있다. 어디에나 있는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다시 어려운 일이 된다.



책상 화병에는 미니 장미가 꽂혀 있다. 좋은 장미는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빛을 받고 얼굴에 표정이 생기고.



내가 어디에서 살았는지 종종 기억하지 못한다. 능청 같지만 사실이다. 기억나는 건 장군이의 이름, 장군이의 눈매, 학교에 있을 때, 장군이가 팔려 갔다는 것, 그 많은 시간을 보내놓고도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 그때 있었던 장미는 다 어디로 갔나. 라디오가 걸려 있던 벽, 그 벽을 보면서 라디오 디제이가 되고 싶다고도 느꼈던 것 같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익숙하면서도 약간 뒤틀려 있었으니까. 아주머니들의 곱슬대는 머리 사이로 비치는 햇빛, 비닐하우스에 꽂혀 있는 어색한 창문.



특별하지 않은 삶도 기록되어야 한다고, 어린 나는 생각했을 수도 있다. 장미는 소파 옆에, 책상 위에, 화장대에 놓여 있다. 한 달 뒤에 다시 꽃이 도착할 것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꽃을 미리 생각하는 것, 심장 하나를 열어 장미를 찾는 순간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어떤 일을 불러오는지 지금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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