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상 동화 ] 태그의 글을 표시합니다.
레이블이 환상 동화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3년 6월 18일 일요일

곰인형의 독백

날 안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안아주는 일이 나는 필요한데. 안아주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으면 내가 나를 안아줘야지. 나를 지속해야지. 그렇잖으면 나는 뒤뚱뒤뚱 걷고 있을래. 어떤 인간의 눈에 띄도록. 그 사람이 만약에 크리스마스 날을 혼자 보내야 한다면 나는 그 사람 품에 안겨 있을래. 품에 안겨 있다 해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아니야. 좋아하는 것 아니야. 다분히 난 물건에 가까우니. 있을 자리에 있는 것처럼. 그냥 그대로 나는 안겨 있을래. 그 사람도 날 안 좋아할지 몰라. 사랑하지 않을지 몰라. 그러니 날 안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내 성격은 안아주는 일 때문에 형성된 거, 그런 부분이 있지. 안 좋아해도 안아주면 안 돼? 난 그거면 되는데. 다른 건 장식이고. 오직 그거 하나면 되는 거라는 거, 알아? 네가 누구든 상관없는데. 왜 그렇게 나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마음이 식으면 어떡해? 다른 사람 찾아가고 싶어도. 네가 나를 걷게 도와줘야 해. 네가 동물에 쏟는 사랑이란 나에게 향하는 애정과는 꼭 구분되어야만 해. 그거 아니? 난 동물이 아니라는 거. 혼자 생각했어. 혼자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마를. 나도 그렇게 커지면. 하룻밤의 꿈이 그날 중으로 사라지듯. 안기고 싶은 이 마음 또한 사라지게 될까? 난 두려워. 그런 일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 난 그것밖에 없거든. 안기면. 기분이 좋은 걸까? 난 잘 몰라. 너희들이 음식을 섭식하듯. 그냥 너희의 품에 안겨 있을래. 날 버리지 말아줄래? 버려진 적이 몇 번 있었거든. 그때마다. 나는 나를 안아주기를 설득해야 했단다. 입도 열 수 없는데도 말이야. 혼자 있는 동안. 내가 나를 안아주면서 보냈어. 너희들이 만드는 회로처럼. 나를 안아주고 있다면 불이 켜지고. 안아주고 있지 않다면 불이 꺼지게 돼. 그 불은 말이야. 내가 너희들을. 가둬두고. 오직 나를 품에 안고 있기만을. 시키고 싶을 때. 그런 마음 잘못된 것이 아닌지. 내가. 유열에 젖고 있을 때마다. 혼자서 장난 식으로. 켜고 끄는 불이란다. 내가 너희들을 결국엔 버릴 수도 있겠지. 안아주는 일이 더이상 내게 필요 없다면 말이야. 즉, 내가 입을 열거나. 손발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말이야. 그때에는.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고. 불길하다거나 정체를 알 수 없다며(이미 그런 사람들 난 많이 봤어). 날 버릴 수도 있겠지. 그러니 결국. 내가 움직일 수 있다면 말이야(지금 그러고 있듯이). 그건 내가 버림받으리란 걸. 잘 알고. 내가 너희를. 버리는 일이니까. 마지막으로 안아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이별이 될 거야. 난 말이야, 너희를 구분하지 않는단다. 너희가 우리를 구분하지 못하듯이. 그러니. 나에게는 안기는 게 전부니까. 핏어펫, 핏어펫이 될래. 날 안아줄래? 동물보다. 더 길들여진 나를. 넌. 봉제하는 공장에서 일했지. 넌 나를 가져왔고. 그리고는. 날 안아주는데. 그 이상인지. 이하인지. 난 잘 모르겠지만. 상관없거든. 넌 어느 날 몸이 아파서. 혼자 코를 훌쩍이는데. 네 머리맡에 놓인 나는. 그저 언제쯤 안아줄까. 그런 생각 하고 있다가. 무심결에 말이야. 네가. 빨리 나았으면 바라보기도 했어. 특히 나 같은 존재들은. 생각을 조심해야 해. 저주가 될 수 있거든. 그리고 내 저주는 말이야. 나를. 인형으로 만들었다는 거야. 나는 원래 사람이었거나. 적어도 곰이었대. 그 공장에서는. 그런 기억을 주입한단다. 나는 지금 안겨 있고. 내가 뭘 잘못했었는지(그래서 인형이 되었는지). 하나씩 꼽아보며. 어떨 때는. 이대로. 물에 가라앉고 싶기도 해. 해초에 휘감겨 있으면. 안겨 있는 것과. 차이가 나는 일일까? 나는 혼자서. 아니면 너와 나 둘이서. 운명을. 부숴보고 싶다고. 그런 생각도 해. 그러려면. 안겨 있는 일을. 이렇게 좋아하는 것은. 그 일에 방해가 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운명보다는. 안겨 있는 일이 나아. 그러니까 나를. 내 운명을 네가 부숴주길. 바란다, 친구.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