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9일 토요일

온천 여행

살구나무 위에 앉아 있다. 손차양을 하고 멀리 내다보고 있다. 어딜 보는 걸까? 나무 밑에서 나는 그런 궁금증을 가진 채였다. 담장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천사가 내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마주친 순간 살구나무가 살짝 흔들리면서 살구 하나를 떨궜다. 나는 그쪽으로 가서 살구를 줍는다. 그리고 입에 넣어 맛본다. 천사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천사님. 네? 무얼 보고 계시는. 이 생각을 끝으로 나는 온천으로 돌아왔다.

온천에 발을 담그고 있다. 주위에는 가운을 걸친 내가 아는 사람들. 그들의 주변으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다. 우리는 대화 같은 걸 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이 온천을 점거하고 있다는 인상이 남기도 한다. 온천 여행은 다들 사는 곳에서 멀리 있는 곳에 오기로 정했다. 일본 식의 찬합에 담긴 식사도 나왔다. 아직 먹기 전이었지만 말이다. 카탈로그엔 그렇게 안내되어 있었고 밖의 커다란 유리 너머로 눈이 오는 것이 보였다. 눈이 오고 있다. 다 같이 놀러 온 이런 날에. 우리는 온천에서 나온 다음 테이블에 앉아 TV를 틀었다. 그리고는 보드게임을 하거나 음료를 마셨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이번 여행에서는 무알콜 음료만 먹기로 했다. 몇몇이 모여 탁구를 하고 돌아왔고, 전자 담배나 연초를 피우는 사람들은 옥상에서 피웠다. 총 아홉 명이 같이 온 것이었고 그중에는 크툴루 관련으로 TRPG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5명이서 일부가 탁구하러 나간 동안 그것을 했다. 재미있었다. 게임이 살짝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게임을 하나 다 만들고 단체로 놀러 온 것이었다.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종류의 게임은 아니었다.

그 게임에는 아까 생각한 천사도 나온다. 타인의 집의 담장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별다른 외부적인 설명이 있지 않다. 살구나무 위에 앉아 있던 천사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하나를 따온 것이다. 성격을 따온 것은 아니고 상황을 가져온 건데, 그는 어릴 적 살구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못 내려왔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천사가 내 옆에서 물에 고개 밑까지 푹 담그고 있다. 여기에서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건 천사로 오해된 내가 아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는 살구나무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천사로 오해된 그 사람은 양털처럼 머리가 곱슬이고…… 우리는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온천에서도.

다시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발을 담그고 있다 보면 한통속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식으로 물과 한통속이라는 느낌을 간직하면 좋은 사람은 몰라도 나쁘지 않은 사람, 일견 눈길을 끄는 사람은 될 수 있겠지. 밖의 커다란 유리 너머로 눈이 오는 것이 또 보였고, 물의 표면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나는 혼자 있어서 그런지 조금 적적한 기분이 들었다. 발은 따뜻했다. 나는 나와서 여기서 준 의복을 걸치고 아까 눈 내려오던 마당에 갔다. 여기는 눈이 아주 많이 내려오고 있었다. 처마 끝으로 그 눈들이 날리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눈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고, 실내에 있는 아까 본 탁구대 근처에서 사람들이 무언가 외치는 소리가 이쪽까지 들렸다.

까만 밤이 왔고 나는 이부자리에 누워 생각을 좀 하다가 다시 온천으로 갔다. 밤이어서 밖의 배경이 검었고 아직 나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진 채였다. 살구나무 위에 앉아 있는 천사가 이쪽을 보며 눈이 웃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여기서(온천 여관에서)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게임은 재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 없을 수도 있겠지.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기 전의 날짜였다. 일정이 촉박하였고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가상의 나날이었다. 게임은 눈이 내리는 유리 너머가 배경이었고 온천 안에는 살구나무가 자라 있다. 나무는 온천수 아래로 뿌리를 뻗고 있고 그 광경은 조금 기이하다. 살구나무 위에는 천사가 있고 그 천사를 누르면 “…….”라는 대사가 나온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