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종의 대강을 점하고 있는 존재군은 단연 요정이다. 곤충이 종 다양성에 기여하는 바와 같다. 몇 쌍의 다리와 날개, 삼부로 나누어 파악 가능한 몸통 구조 등의 조건 안에서 곤충들의 생김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요정들도 몇 가지 구성요건을 가지고 있다. 모든 벌레를 곤충이라고 하지는 않듯이 모든 유인종을 요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날개를 가졌는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지 같은 것은 (비록 많은 요정들이 그런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그 존재가 요정이라는 사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요정을 요정이게 하는 요건들은 시점에 얽혀있다. 다음의 질문들에 긍정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1. 현재 인간이 아닌가?
2. 과거 인간이었던 이력이 없는가?
(이처럼 분류법이 완전히 인간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에도 유인종이라는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기만적이지 않은가? 개인적인 불만이다.)
장래에 인간이 될 가능성의 유무는 요정과 비-요정(임시로 조어된 개념이기 때문에 하이픈을 넣는다)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어떤 요정들은 인간이 된다. 그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까닭은 그들 중 일부가 인간으로 변태할 수 있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특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과 부분-혹은 전체적으로 유사한 외양을 지녔고, 인간과 소통 가능하면서-’라는 숨은 전제가 있다. 서두에서 말한 유인종/대화종 명칭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기도 하다. 다만 요정 연구사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이 부분이 명문화된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인간에게 우호적일지라도 인간과 비교당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요정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추측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숨은 전제를 모르고 요정을 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 같은 분류기준이 체계적이고 정확하지는 못하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폴 버니언이 계통상 구두수선공 요정들의 친척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 한 쪽은 성냥갑 안에 한 다스가 들어가지만 다른 한 쪽은 새끼발톱 위에 성냥갑 한 다스를 올리고도 남는다. 그런 그들을 달리 무엇으로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요정들의 외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특징들은 요정과 비-요정을 가를 때보다 요정들을 한층 더 세분하고자 할 때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같은 분류법은 상당히 재미있다. 가령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육안식별가능성을 두고도 보통 인간의 눈에 보이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렇지 않은 경우 전문가의 눈으로는 인식 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 육안식별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 요정들끼리는 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크기를 기준으로 요정들을 재분류할 때는 자연히 공룡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크거나 작아봤자 미터 단위 안팎을 오가는 인간들과 달리 요정들은 밀리미터 단위에서 킬로미터 단위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최다개체가 분포되어 있는, 달리 말해 양적으로 요정의 대표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크기는 6:1 스케일이다. 인형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피규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이즈와 같다. 우연이 아니라면 상상력을 발휘해 볼 만한 공통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