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31일 금요일

야쿠자의 딸

그녀는 야쿠자 조직원의 딸이었다. 이 시기 조직은 한창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다 제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위에서 전달되어 왔는데, 그녀에게 있어 부담스럽거나 안 좋게 생각된다면 응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곧 있으면 다가오는 그녀의 학교 졸업식에 그녀의 아버지와 같은 위치의 조직원들 두엇이 가 거기 올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에 만일 응한다 해도 아버지의 조직 내 위상에 대한 보상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조직 내에서의 위치란 그런 식으로 정해지고 참작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건에 대한 보상은 철저히 그녀만을 위한 것, 그녀에게 빚을 지는 일로서, 아버지의 경우 당연히 그녀의 졸업식에 참가할 테지만 이 일과 관련된 어떤 일도 맡기지 않겠다는 입장이 전달되어 왔다.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런 입장은 그녀가 아닌 아버지에게로 전달되어 왔다. 이런 언급을 통해, 아버지가 조직의 일로 반쯤은 그날까지 다소 신경이 소모될 만한 입장에 놓였다는 것과, 조직이라는 데의 일처리가 어쩔 수 없이 거칠고 혹은 그런 이름의 구성체답게 당장의 화급한 어떤 일에 맞춰서만 조금 강제적으로, 정신 없이, 혹은 일사분란하게, 처리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여겨볼 수 있었다. 졸업식 당일 그녀는 그 조직원들 두 명을 처음 봤는데,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녀가 어릴 적에 이혼했고 그래서 친한 동생 한 명과 아버지, 그리고 그 말단 조직원들 두 명이 오늘은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조직이 그들을 이 자리에 파견한 이유는 그녀의 친한 동생에게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동생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야쿠자의 딸이었고, 그녀보다 조직의 일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고, 어느 정도 사업적인 관계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동생의 가족이 속한 조직은 얼마 전 그녀의 아버지가 속한 조직과 대립을 했고 유혈사태를 만들었다. 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어 두 조직은 대외 활동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있는 상태였다. 이 졸업식에 찾아온 조직원들 중의 한 명은 이지적인 수려한 외모로 자연스러운 웃음을 흘렸으며 말하자면 제비 과인 듯했다. 조직에서 그런 얕은 생각으로 인선을 정했다는 티가 났으나, 그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것 이상으로 더 뭔가를 하는 부분은 없어보였고 그 점이 다시 제비 과인 것 같았다. 또 다른 한 명은 큰 덩치의 사내였는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편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위압감을 주는 그런 부분에 있어 그렇게 해야 할 것으로 전에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행동거지가 부드럽고 매너가 있든 배려심이 있든 그 사이에 있는 그 어떤 것이 없는 것 같지 않았다. 동생과 관련된 그 조직에서 동생의 아버지는 그녀의 아버지와 비교해 좀 더 높은 위치에 있었으나, 조직의 향방을 가르는 의사결정의 부분에서 목소리를 낼 정도로 그런 높은 위치는 아니었고, 단지 이렇게 맞은편 조직에서의 의사 타진을 하기에 적합할 정도였다. 조직 일이란 게 보편적인 그런 체계를 갖추고 있진 못한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인지 현금 봉투를 내미는 큰 덩치의 사내의 무뚝뚝한 태도는 역설적으로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또한 배려심 있고 매너 있는 어떤 행동거지를 연상케 했는데, 그러면서 제비 과의 사내가 덧붙여 말한 것이었다. 「위에서 복잡한 말 필요 없이 전달하라고 했던 부분입니다. 자리에 참석할 수 있게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그녀로서도 이것은 반쯤 애매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어서 허락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예전부터 소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한 번쯤은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어릴 적에 마주 앉아 들었던 입장으로 외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따라서 친한 동생이 졸업식에 참석하겠다는 말을 들을 때의 표정도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찾아온 조직원들 두 명의 외모나 성격 이런 면이 겉으로 보기에 나쁘지 않은 것 같았고, 아버지가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구나 싶어 무언가 정체 모를 호감이 일기도 했다. 그들이 건네온 현금 봉투는 그녀에게만 전달되는 것이었고, 친한 동생에게는 전달되는 것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녀에게만 돈을 전달함으로써 그들이 원래는 이 자리에 자연스럽게 올 것이 아니었는데 그녀의 동생과 이제부터 할 말이 있음을 전달하고 있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녀의 동생이 이런 기색을 알아차리곤 말했다. 「그쪽에서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건가요?」 순박한 덩치 큰 사내가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어디서 오셨는데요?」 「맞은 편의 조직에서 왔습니다.」  이지적인 인상의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언니가 그쪽과 인연이 있었나요?」  「그녀의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당분간 싸움이 없으면 좋겠다는 전언입니다. 아시다시피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요.」 「잘 전달해보죠.」  「좋군요. 일은 끝난 듯하군요.」 일이 끝난 뒤에 그들 다섯 명은 식사를 하러 갔다. 부담스럽거나 안 좋게 생각된다면 응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일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끝난 것 같았고, 그녀는 식사 자리에서 간간이 웃으며 왠지 즐거운 기분을 느꼈다. 그러다가 식사 도중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런데 같은 데에 있었지만.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인데. 우리가 그리 큰 조직도 아니고.」 그녀와 동생의 얼굴에 의문 부호가 떠올랐다. 조직에서 나왔다고 하는 두 명의 얼굴에는 당황스런 기색이 어리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저희도.」 「가족의 일로 잠시 불려 나온 것뿐입니다. 어린 딸의 졸업식을 망치면 안 된다고 해서요.」 아버지가 말했다. 「거참. 한쪽은 그렇게 보이는데. 다른 한쪽도 비슷하게 마찬가지고.」 「그렇지요. 저희가 식사는 사죠. 그렇게 하라고 전달을 받았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뒤 웃어 보이는 둘의 얼굴은 똑같이 이런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특별히 지시받은 사실 그대로 따르는 것에 짐짓 유쾌한 기색이었다. 그 말을 듣고 그녀의 동생은 조금 당황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언니인 그녀의 경우 가족의 일로 불려 나왔다고 하는 그들에게 어떠한 동질감도 느껴지질 않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여겨졌다. 오히려 조직원인 줄 알았을 때가 같이 있기 더 즐거운 것 같았다. 그녀가 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꼭 외부인들을 불렀어야만 했나요?」  「글쎄. 내가 결정한 건 아니라.」  「아버지가 일하는 데잖아요?」  「그 말대로란다. 하지만 난 말단인지라.」  「거기가 아니었으면 이 학교 졸업도 못했어요.」  그녀의 말에 아버지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고 그녀의 앞에 앉은 나머지 세 명의 얼굴에도 안온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두 명의 조직에 속해 있었던 줄 알았던 사내들이 차례로 말했다.  「사실 저희도 이 문제에 있어 전적으로 외부인들이 아니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부모님께서 번 돈으로 어릴 땐 지내기도 했고, 실제로도 이런 자리에 이렇게 불려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저한테는 처음 있었던 일이지만 말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듬직한 체구의 사내는 그녀의 동생에게 말했다. 「일이 안 좋게 흘러가는 것 같아 걱정이 되는군요.」 「그래요. 그렇지만 뭘 아신다고요?」 「흠. 사과를 하시는 게 좋겠군요.」 아버지의 그 말에 수려한 인상의 사내까지 고개를 숙여서 그녀의 동생에게 사과했다. 그 순간 그녀는 야쿠자 집단의 무모한 기색이 떠올랐다. 「너무 화내지 마. 그러면 진짜 야쿠자 같잖아.」라는 말을 할까 싶긴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무서워서는 아니었다고 그녀는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또 달랐을 수도 있다.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음식을 입에 넣다가, 그녀의 그런 기색을 알아차린 것인지 배시시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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