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3일 화요일

여우

고향에 개를 많이 키우는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학교 앞에 살았다. 학교는 야산 중턱에 있었고 노파의 집도 그 근방 비탈 어디쯤이었다. 학교가 향교였을 때부터 그 근방에 살았다고 했다. 본인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따금 그 노파의 심부름을 했다. 하관이 길고 코가 높고 양쪽 눈이 서로 다른 농도로 흐려져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나운 인상이었는데, 그런 얼굴로 꾸지람을 하면 더 무서울 것 같아서 거절하지 못했다. 심부름의 내용은 주로 담뱃집 할머니더러 인편으로 (물론 그것도 내 역할이다) 이런 저런 약을 보내라고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마을에 하나뿐인 잡화점을 다들 담뱃집이라고 불렀다.

노파는 눈도 나쁘고 건강도 썩 좋지 않아 담뱃집에 오가는 일이 힘에 부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 말하자면… 보름에 한번 꼴로 악을 쓰며 나를 찾는 무서운 노파가 썩 달갑지는 않았다. 노파의 집은 진흙 벽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되어 있었고 TV와 이불이 있는 방 한 칸을 빼면 모든 공간이 뚜렷한 용도 없이 어지럽혀진 채였다. 세간도 얼마 없는 집이 그렇게 너저분했던 까닭은 물론 개가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노파의 개들은 매우 빨리 크는 편이었고 노파는 개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언제 보아도 개들은 절대로 <너무> 많아지지는 않았다. 어릴 때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노파는 내가 졸업하기 전에 마을에서 사라졌다. 노파의 집에 남은 개들은 마을 노인들이 나눠가졌다.

마을에서 어떤 노인이 안 보이게 되면 모친에게 까닭을 묻곤 했다. 모친은 거의 매번 서울로 갔다더라고 대답했다. 개 키우는 노파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냐고 모친이 내게 캐물었다. 노파의 마지막 심부름을 한 게 그 한달 전쯤이었다.

그날은 노파의 집이 무척 조용했다. 노파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귀가 어두운 사람은 목소리가 크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노파는 거의 고함을 치듯 이상한 개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한 개가… 이상한 개가 있다. 이상한 개 말고는 없다.

나는 심부름을 하러 그 집에 간 것이었다. 노파는 언제나 이상했고 개들도 언제나 그랬다. 노파는 정신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젓고 담뱃집 할머니더러 한번 다녀가라고 해라, 하고 나를 내보냈다.

나오는 길에 어두운 부엌 쪽에서 한 쌍의 안광을 봤다. 노파의 개들은 늘 집 이 곳 저 곳에 아무렇게나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하게 생각지는 않았다. 그날 담뱃집 할머니에게 노파의 소식을 제대로 전했는지 어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는 내가 졸업하고 삼년 뒤에 폐교되었고 노파의 집도 지금은 흉가가 되어 있다. 그 근방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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