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5일 화요일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이들과 비대면 수업을 진행한 지도 1년이 되어간다. 어른들이 어렵지 아이들은 교육을 시키면 금세 배운다. 일곱 살짜리 아이를 둔 선생님은 코로나 이후 매일 울면서 출근한다고 말한다. 저학년 아이들의 온라인 숙제는 엄마의 몫이며 자신의 삶이란 없다고. 그는 늦지 않았으니 아이를 낳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가 칫솔을 꺼내 들고 화장실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선생은 매일 울면서 출근하는 여성들의 얼굴을 생각했다.

상준이는 쉬는 시간에 카메라 앞에서 먹방을 한다. 그는 양갱을 한 입 물고 카메라에 들이밀고 웃는다. 저 멀리서 손을 쭉 뻗고 내리고 디스코를 추며 다가오기도 하고 인형을 자신의 자리에 꺼내둔다. 가끔은 강비글로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면 재희도 지지 않고 인형을 찾는다. 뭐가 즐거운지 모르지만 그들은 즐겁다. 아이들은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쌤. 저 쌤 얼굴 처음 봐요.”

재희는 마스크를 벗은 한선생의 얼굴을 처음 본다. 마찬가지로 한선생도 아이의 얼굴을 처음 본다. 묘한 기분이 들 때쯤 상준이는 놓치지 않고 한마디를 던진다.

“잘 봐둬.”

“왜?”

“지금 선생님이 가장 예쁠 때니까.”

세상에. 도대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걸까. 한선생은 타고남이란 무엇인가 싶었다. 공부머리로는 배울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난 너무도 불행했고
난 너무도 종잡을 수 없었고
난 무지무지 외로웠다

그래서 결심했지, 가능하면 오래오래 살아야지 하고
나이 들어서 엄청나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부분, 이바라기 노리코 



이바라기 노리코가 떠오르지만 그는 모르겠지.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병증법이라고 적었던 아이. 한선생이 병이 아니라 변, 변, 변, 이라고 세 번 발음하자 똥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웃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아이들을 보면서 가능하면 오래오래 살아야지 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한선생은 잠시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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