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30일 금요일

양말

양말을 뒤집어서 걸어 놓았다. 뒤집힌 오망성이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양말을 뒤집어서 걸어 둔 존재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이 있다. 부모님은 그런 약속이 나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듯했지만(그건 부모님의 돈이기에) 나는 TV를 봄으로써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면 하루 종일 TV를 보면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누워 있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수건을 걸어 둔 선반에 백조의 무늬가 양각되어 있는 기념주화가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선반 위에 놓인 그것을 집어 들고 당장 문방구로 갔다. 그리고 문방구 문 옆에 있는, 동전을 끼우고 돌려서 뽑기를 할 수 있는 기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백조 주화를 넣고 돌렸다. 그 기계의 안에서 뭐랄까 금속성의 딸깍거리는 음이 났는데, 나는 그것이 왠지 ‘영차’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기계의 밑부분에 반출된 플라스틱 알을 들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돌아오니 언니가 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언니 뒤에 서서 만들어지고 있는 떡볶이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이거 맛있겠다.” “응, 그래.” “나 이거 많이 줄 거야?” “응. 많이 줄게.”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플라스틱 알을 먼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의자 위에 앉아 그것을 두 손으로 쥐고 딸깍, 하고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백조 모형이 들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백조 무늬가 양각된 기념주화를 기계에 넣고 돌렸더니 다시 백조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직 난 문학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건 왠지 문학적인 종류의 사건 같았다. 그래서 난 헤벌레, 하고 웃음을 지었다. “왜 혼자서 웃고 있니?” 언니가 내 방으로 들어와 떡볶이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나는 백조를 쥔 내 손을 황급히 뒤로 숨겼다. “뭘 숨기니?”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그 사건을 내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언니에게도 말하는 것을 삼갔다. 하지만 난 궁금한 것이 생겨서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양말을 뒤집어서 걸어 놓는 건 무슨 뜻이야?” “그건 네가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는 거야. 같은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사실을 알 수 있지. 내가 떡볶이를 오늘 만든 건 그 때문일지도 몰라. 그리고 네게 줄 것이 있어.” 언니는 그렇게 말하곤 자기 방 안에 가서 어떤 물건을 가져왔다. “자, 열어보렴.” 그 안에는 양말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도 왠지 문학적인 사건처럼 느껴져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나는 왠지 시무룩해져 버렸다. 왜냐하면 그릇에 담긴 떡볶이가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고마워. 떡볶이를 이렇게 많이 줘서. 그리고 양말도 줘서 고마워. 그런데 떡볶이가 너무 많아. 그러니까 이거 같이 먹어줄 수 있어?” “그럼.” 언니는 그렇게 말하곤 포크를 두 개 가져왔다. 그날 밤 나는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어떤 아파트의 주방 같은 곳이었는데, 큰 백조가 주방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말했다. “안녕, 백조야. 다시 양말을 뒤집어 놓지 않을게.”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