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3일 수요일

별빛 나무

오래된 나무가 빛을 발하며 서 있습니다. 나무의 죽음이 가까워져 온 것이죠. 나무의 명예는 오랜 기간 동안 흙 속에서, 제 자신의 뿌리 언저리에서 자리를 지키며 있었답니다. 그런데 서기관 또한 이 자리에 서 있군요. 군밤 모자를 쓴 서기관은 나무의 길지 않은 생애(서기관은 이 나무보다 오래 살았습니다)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합니다. 주로 이 나무의 생존과 관련된 일들이었죠. 한 차례의 대위기가 있었던 이후로 이 숲에 사는 나무들은 약 300년 동안의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합니다. 그중에서도 이 나무는 평화로움을 사랑하는 성향이 짙었다고 하는데요. 주변의 다른 나무보다 이르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은 그러한 성향 탓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 또한 서기관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에 얽힌 주변 다른 나무들의 가지와 뿌리들은 빛나지 않고 잠시 몸을 떠는군요. 그것들도 오래된 나무들이지만 아직 죽음의 때가 가까워져 오지 않은 것이죠. 나무가 별을 닮아 스스로 빛을 내기도 한다는 것은 이 숲에 사는 이들에게 알려진 지식입니다. 더 할 말은 없군요.

(멎는다)


지금 별빛 속에서 새로운 나무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우선 나무의 인명부에 등록을 하고, 나무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폴리에틸렌 보온재를 밑동에 감싸줍니다. 그 자리에 있어 온 제멋대로인 나무들도 뿌리가 닿는 교신을 통해 어린아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새로 나무가 태어나는 자리와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군요. 아무래도 초조한 모양입니다. 나무의 현자들, 아주 오래 살아 온 9명의 나무들이 숲 깊숙한 곳에서 제각기 다른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무들의 회합’을 하고 있습니다. 회합 자리에는 성별이 모호한 미형의 인간이 가장 상석에 앉아 있고 좌우로 네 명씩, 각각 노인, 젊은이, 사제, 우두머리 등이군요. 듣기로는 이들의 외형을 담은 카드들이 알음알음 퍼져 인간들 사이에서는 점을 보는 물건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이 중에는 서기관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 다섯이고, 나머지 넷은 서기관과 안면이 없다고 합니다. 우선 그 아이를 감싸고 있는 별빛, 그 별빛의 문제가 거론됩니다. 문제는 없느냔 식입니다. 가장 상석에 앉은 사람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말을 듣고 나머지 나무들은 잠시 생각에 잠긴 채입니다. 한 나무가 뒤이어 말합니다. 그리고 연이어 다른 나무 또한 말을 섞습니다. “우리들은 나무들의 전쟁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무의 현자들 중 가장 어린, 그리고 온건파에 속해 있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무들의 전쟁은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에 일어났던 것으로……. 이 사회의 족적에 상흔을 남겼습니다. 이제는 의례화된 문구이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이 세계는 크게는 서기관을 지배자로 여기는 인간들의 사회와, 이 9인회로 대표되는 나무들의 나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고는 해도, 예전에 한 번 전쟁이 일어났으니만큼 각종 알력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겠죠. 그러나 지금 전쟁이 벌어진다면 인간 진영과 나무 진영의 싸움이 아닌, 각종 이권에 엮여 있는 인간, 나무 연합 진영이 혼잡하게 섞인 아전 투구의 장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아전 투구라. 더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멎는다)


새롭게 태어난 나무는 전에 죽은 나무의 명예를 이양받아 평화로움을 중시하는 성격입니다. 온몸에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처럼, 마치 야구경기장의 7판 조명인 것처럼 별빛에 둘러싸여 있군요. 생후 15년 정도까지는 이러한 별빛이 나무를 뒤따르게 됩니다. 이 별빛을 자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인간 사회의 값비싼 보석임과 동시에 자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소속 여부야 나무에 달린 것일지라도, 지금 인간의 어린아이의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나무가 인간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지 여부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나무의 뒤를 따르고 있는 고용인이 빵칼로 별빛을 잘라내 그릇에 담고 나무에게 먹이고 있군요. 대부분의 나무들은 이렇게 자신을 뒤따르는 별빛을 잘라내 먹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멎는다)


명예라는 말이 조금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겠군요. 우리 인간들이 사용하는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명예와 그리 차이가 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것도 우리 인간들이 붙인 말이니까요. 우리는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 같으면서도 그러나 사소한 외양 하나는 낚아챘다는 그런 자부심이 드는 언어 사용을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들은 말입니다. 새롭게 태어난 이 나무는 이유식보다는 별빛을 잘라낸 치즈를 더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귀여움이 큰 화젯거리가 되고 이목을 끄는 것은 저 나무들의 양식에도 다르지가 않아서, 여기저기 기생뿌리가 이 자리에 지금도 닿고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말하자면 저것은 사진을 찍는 요식 행위와 비슷한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러니까 이 나무들의 사회의 의사 소통망은, 파란 색의 새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유사한 데가 많다고 말해두지요.

(멎는다)


나는 명예관리국의 일원입니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마법 적성이 요구되죠. 나는 예언 쪽이었습니다만 동료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실 예언가들의 외양에 대한 잘못된 소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중요한 세미나가 열린다고 해서, 그곳엘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곳에는 어린나무들도 몇 찾아올 거라고 하더군요.

(멎는다)


어린나무들은 대학 생활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멎는다)


나무들이 자신의 가지로 숲에 쌓인 담배꽁초들을 주워서 한군데로 모으고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꽁초를 버려선 안 되지만, 문득 이런 광경으로 부모를 채근하여 관광 오게 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지 않답니다.

(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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