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8일 화요일

앞서가는 마음 같은 것

네가 알려준 서점에는 파본이 없다.
그 사실을 나는 A부터 Z까지 모든 서가를 둘러보고야 알았다.
무오류의 서가 사이를 나는 이제 막 잠에서 깬 얼굴을 하고 돌아다닌다. 한 페이지 존재하고 난 뒤에 다음 페이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이렇게나 쉽다. 마지막 페이지엔 이것을 지은 사람과 묶은 사람, 찍어낸 사람의 이름이 순서대로 적혀 있다. 뒤표지엔 책에 걸맞은 값이, 당연한 사실이 검은색 잉크로 인쇄되어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놀랍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등들. 등을 돌린 듯하지만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열어보면 유익한 마음들이 쏟아지겠지. 그걸 모두 접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끌리듯 다가간 곳은 악곡집으로 가득한 서가. 이곳을 알려준 너에게 악곡집에 실린 노래 하나를 불러주고 싶다. 신나는 거 말고, 너무 슬프거나 편안한 거 말고, 너한테 맞는 거. 너한테 맞을 것 같은 거.
악곡집 한 권을 사서 서점을 나선다. 집에 돌아가 혼자 곡을 고르며 시간 보내야겠다. 시간 들여 고른다 해도 절대 고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오히려 좋을 것이다. 멀쩡한 생각은 저 뒤에서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다. 너를 다 알고 싶은 마음은 나를 한참 앞질러 갔고.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