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2일 일요일

Miroirs No.3


자꾸 생각이 나서 자꾸 같은 부분을 보게 된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현실인지 악몽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는 장면을. 그런 뒤에 창문 앞에서 커튼이 흔들리는 장면. 내가 이 모든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악몽과 악몽의 뒤에 흔들리는 커튼. 거기에 아무것도 없고, 오전 시간에 멀리서 소음이 들려오는 그 장면.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커튼 앞에도 뒤에도 사람은 없다. 악몽은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악몽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악몽에 대한 영화이고, 그것이 악몽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영화이고, 악몽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며 악몽에서 깨는 영화이다. 베이지색과 푸른색의 커튼 앞에서 잠을 깨는 영화이다. 

2026년 2월 20일 금요일

돌에 걸려 넘어지기

 

 

그런데 어떤 돌에 걸려서 넘어질 때, 그 순간에 그 돌의 생김새를 보는 사람은 그 돌이 이전에 걸려 넘어진 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돌의 모서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같지만 말이다. 그런데 돌의 모서리에 왜 자꾸 걸려 넘어지는지, 이게 내 발의 문제인지, 돌을 잘 치우지 않는 xx구청의 문제인 건지, 아니면 구청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는 xx시청의 문제인건지, 아니면 그 시청에 제대로 된 제도적 지원을 하지 않는 국가 차원의 문제인 건지, 국가로서는 또 자신을 소외시키는 지정학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 있고, 돌에 걸려 넘어지면서, 아직 완전히 바닥에 엉덩이를 찧기 전에 이제 곧 아프겠지, 아야!, 소리가 나겠지, 그러면 이런 문제들이 모두 아야! 소리와 함께 사라지겠지. 그 언젠가 고양이가 내 생각을 방해했던 순간처럼 말이다. 나는 아주 은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그 생각은 매일 일정 시간 반복하는 생각인데, 내가 생각을 하던 한가운데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울었고, 야옹! 소리와 함께 그 모든 생각이 소멸해버린 것처럼. 나는 고양이가 나에게로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고양이가 내 옆에 있었을 때도 나는 고양이 옆에 없었는데 고양이가 나를 깨우지 않았다면 나는 소멸해버렸을지도 모른다.  

2026년 2월 8일 일요일

곡물창고 보름간

『곡물창고 보름간』은 보름에 한 번 곡물창고의 입하소식을 모아 보내는 이메일 구독 서비스였습니다. 21년 2월 28일부터 25년 12월 2일까지 총100회 발송되었으며, 109분의 구독자들이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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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7일 토요일

아기

부장급들이 업무 중 이상한 소리(끄윽, 후후, 습습 등)를 내는 건 어딜 가나 똑같은 것 같다. 실업급여를 다 타고도 두 달이 지나 겨우 일을 시작했다. 가증스런 11개월 계약직. 나까지 해서 사무실에 5명.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좋지 않으면 어쩌겠나? 그쪽에서도 나름 내 사정을 봐줬다. 나는 아기를 얻었다. 아기도 자나 깨나 부장님처럼 이상한 소리를 낸다. 크으엑, 흐륵, 헤엑... 아기 보기의 삼분지일은 유튜브로, 삼분지일은 조리원에서, 삼분지일은 몸통박치기로 배우자님과 함께 배우고 있다. 아기는 뭘 먹으면 트림을 시켜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 들었다가 놓았다가 난리도 아니다. 속싸개는 왜 또 그렇게 어려운지, 가장 미묘한 문장보다 세심하게 가장 아름다운 문장보다 팽팽하게... 한 획만 틀려도 와르르 펼쳐지며, 그 속에서는 완전 미완의 새로운 인간이 발버둥치고 있다. 오늘은 좀 다른 트림 방법을 시도해 볼 참이다. 뺨을 잡고 등을 받치고... 뭘 어떻게 해주지 않아도 쉽게 트림이 나오는 부장들이 부럽다. 배우자님이 지난 10개월간 인하우스 인간 생산을 도맡아 개고생하는 동안 나는 이것저것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뭔 육아 콘텐츠를 써보고 싶은 유혹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이 경험을 내 것으로만 두고 싶은 맘도 크다. 쓰기와 인간이 콘텐츠라는 틀거리 속에 한없이 모욕받고 있는 이런 시대에, 아기에 대해 뭘 쓴다면 그것은 그래도 되는 일인가? 아기를 얻었다 하고 말기에는 아쉽고 전부 다 쓰자니 하염없다. 지난 열 달간 아는 사람들이 나더러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두렵다고 답할 도리밖에 없었다. 스스로에게 ‘육아는 인생 최대의 콘텐츠’라고 되뇌며, 아파트 거주자들이 주도하는 육아 문화-쇼츠의 홍수에 떠밀려, 성채 같은 아파트들을 전전하며 이것저것 당근을 해왔다. 지금은? 지금 인간은 모두 개새끼로 보이고 그 어떤 시발것도 두렵지가 않다. 아기는 기사고 나는 말이다. 작고 온기 있고 꼬물거리는 자신의 인간 아기를 처음 품에 안아보는 그 순간 생각, 인간이 모두 아기였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하고 한스런 일인가? 부모가 되어보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분명히 그렇고, 부모의 마음은 선의 심연 속 악의 등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또한 아기를 왜 ‘얻었다’고 하는지를 알게 되고, 그리고 아기를 왜 ‘본다’고 하는지를,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를, 어째서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아지는지를, 부활이 무엇의 비유인지를, 쏟아지는 빛살을 맞아 아기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듯 알게 되고... 아직 안팎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기는 더하고 덜 것이 없고 고칠 곳이 전혀 없군... 책보다 낫고 시집보다 낫군, 내 것이되 내 것 아니군... 나는 읽을 수 없는 것을 읽으려 하는군... 유리관의 부활일기 같은 건 어떨까?

2026년 2월 3일 화요일

허니콤

“베란다 바깥쪽에 붙어 있던 커다란 벌집, 아직도 있다. 꿀도 없고 벌도 살지 않는, 내 머리통만 한 벌집이다. 어쨌든 꽤 커서, 봄이 되면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다. 벌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하면, 당연히 아무 일도 안 벌어지고 있다는 슬픔이다.”*

나는 이 슬픔을 신문지 구기듯이 뭉쳐두었다가 월요일마다 펼쳐보았다. 볼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당연히 아무 일도 안 벌어지고 있다는 슬픔이었다. 나는 그 슬픔을 포갠 접시처럼 쌓아 올렸다가 화요일마다 한 장씩 집어던져 깨뜨려 보았다. 그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났는데도 당연히 아무 일도 안 벌어졌다는 강화유리 같은 슬픔이었다. 나는 수요일마다 그 슬픔으로 남의 집 창문을 해 넣으러 다녔다. 그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슬픔의 단열이 너무 잘되어, 슬픔은 각자의 취미가 되어버렸다는 슬픔이었다. 나는 목요일마다 그 슬픔을 내 것으로 착실히 챙겨서 출판사에 취직했다. 슬픔을 교양서로 편집해 천 부씩 출력해서 금요일 아침에 전국의 서점에 입고했다. 무려 월급이 나오는 슬픔이었는데, 그럼에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당연히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슬픔이었다.

나는 완전히 지쳐서, 이틀을 꼬박 자면서 쉬었다. 빈 벌집 생각은 멈추고. 그런데 내가 정말로 멈출 수 있었을까? 자는 동안에도 과각성된 슬픔은 잠들지 못하고 육각형 결집을 시작한다. 벌집 만들기 경연대회가 있다면 단번에 우승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커다랗게. 당연하게도, 나 같은 일반인, 가해자, 한계 많은 동시대인은 슬픔으로 경연을 걸어서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슬퍼하는 사람들을 자꾸 이겨버린다.



*블로그 이웃 eaches님의 이야기다.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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