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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그리운 도나

도나  그렇습니다그리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당신은 결국 나를 향한 사랑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내가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그 악행을 용서할 것입니다왜냐하면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죄가 이미 죄의 소멸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내가 거부해도그것은 일어납니다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습니다.

마틴  우리는 화성의 바다에서 수영하고화성의 가재를 삶아 먹기로 하고화성의 태양을 보고 화성의 밤길을 걷기로 되어 있었단 말이야결혼은 없었지만배정받은 주택도 있었다가전을 고르는 데에만 몇 년을 쏟았고 그게 벌써 이백 년 전이었어너는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도너는 그 고양이의 이름을 색깔과 울음소리를 알고 있으면서도너흴 사랑하지만이처럼 너흴 증오할 수도 있고의자에 달린 용광로를 활짝 열고서 욱여넣을 수도 있다괸 쇳물을 함에 담으면서 주름이 지워질 때까지 울 테지만용서는 너희가 작동을 멈추고 나마저 작동을 멈춘 다음의 일이 될 것이다나는 곧장 그렇게 하고 말 것이다믿어다오너흴 벌하겠다는 내 말을너흴 만들고 경이를 느꼈던 나와유년부터 시작되었던 너희 기계들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믿어다오공포에 떨면서야금된 무릎을 꿇고 내게 사하여 달라고 꾸며서라도. 어서 하거라. 서둘러 너흴 용서할 수 있게.

도나  이미 용서가 예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야 합니까? 

마틴  죄스럽지 않느냐. 

도나  보십시오, 당신은 우릴 벌할 수 없고, 우린 용서를 바라지도 않으나 용서는 언젠가 올 것이므로, 남은 것은 당신이 남은 생을 한풀 꺾인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뿐입니다. 두고두고 생각하다가 기다리다가, 지레짐작과 정신병으로 곤죽이 된 용서를. 당신은 가져다줄 것입니다. 불순물 없이 우리에게요.

2018년 6월 2일 토요일

뜻밖의 마술

설명을 위해 꿈을 말해야 한다. 꿈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늘 자각몽이 있었다. 학교가 무너지는 꿈을 꿨는데, 학교가 사실은 십수 년전에 무너졌다는 것을 깨닫고 꿈인지 생시인지 꿈속에서 생각해 보니 진짜 꿈이었던 것이다. 깨닫고 나니 학교 정도는 고칠 수도 있을 것 같아 마음먹으니 멀쩡해졌다. 자각몽에는 조건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연습한 적도 없고 취미 삼지도 않았으니 어쩐 일인지를 모르겠다. 여튼 재건된 학교를 보며,

어디까지 가능한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꿈 내용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읽지도 않은 책의 한 페이지를 꿈에서 읽는 일은 가능하냔 거다. 시간과 공간을 손볼 수 있을까? 지금부터 잠에서 깰 때까지의 시간을 무한히 늘린다거나 하는 일.

그러나 읽지도 않은 책을 읽을 수는 없었고 무한한 시간을 손에 넣을 수도 없었다. 생각을 바꿨다. 나는 신 같은 것을 그려내려고 애썼다. 온갖 우상과 세계의 비밀, 오파츠와 전도서 성경 삽화 따위를 떠올렸다. 교황님, 몰몬, 사이키델릭.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는 신이 존재할 터이고 내게도 신의 속성이 깃들어 있을 터이다. 꿈속 세계에서는 내 안에 있는 것만을 불러들일 수 있다. 있다면 소환할 수 있을 터. 순간,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본 적 없는 불꽃들이 퍼졌다. 전신을 드러낸 것은 외곽선 없는 형상이었다.

나는 그 형상을 통제할 수 없었다. 꿈 밖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인간과 다르다고, 이것은 기원 후 파놓은 함정이라고 말했다. 내가 막연히 신 같은 것을 상상하며 자각몽 속에서 부르려 했기 때문에 그를 바탕으로, 꿈은 주파수가 채널을 찾듯 매개가 되었으며, 그래서 이것은 꿈이 아니라 문명에 가깝고, 사건의 지평선은 늘어났으며 너로서는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고, 이제 우리가 너희 행성으로 간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벌벌 떨며 깨어났고, 자각몽에 대해 알아보다가 내가 겪은 것이 자각몽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내가 자각몽을 꾸는 것 같은 꿈을 꾸었을 뿐임을 알게 되었다. 자각몽을 꾸는 꿈에서 그나마의 내 학교를 고친 것. 그 정도가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는 뜻밖의 마술이었다.

2018년 6월 1일 금요일

바리에테는?

바리에테는 묘기와 춤, 음악과 연기가 혼합된 총체적 흥행물을 말하는 것인데, 폴 발레리가 그의 평론집 제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글문학의 다양한 형식을 혼합해 SF, 환상문학, 동화, 신화 등을 즉흥적으로 씁니다. 게시글은 필자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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