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6일 금요일

텔레파시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말이면서 생각인 동시에 글인 무엇이다. 문자와 음성과 영상을, 그것들의 교환을, 공간(CYBER~~~)을 포함한다. 이것은 ‘바깥’에서 보면 일종의 초보적인 텔레파시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는 이런 식의 언어를 이렇게 대규모로 사용해본 적이 없다. 이 조건 위에서 우리는 타인과 전례 없는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영향 도중 약하거나 강하게 온갖 방식으로 유형적으로 미쳐버리는 사람들(나 자신 포함하여)을 많이 보았다. 아니 그보다는, 함께 미쳐가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완전히 변해버린 언어 환경에 맞는 언어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주먹도끼도 모르는데 손에 기관총이 들려 있다. 초등교과에 매스커뮤니케이션(집체대화?) 과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언어 교과 자체가 일신되어야 할까? 어른들도 자신이 알던 언어와 이곳의 언어 사이의 괴리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하릴없이 녹아든다. 곤란에 처한 건 키오스크 앞의 노인들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문자화되고, 문자 특유의 곤란이 모든 것 위에 내려앉는다. 인터넷이라는 입체 지면을 들여다보면, [표현의 자유]와 [가짜뉴스]라는 두 개의 날개로 우리는 진창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날개로. 진실의 어려움, 정확해지기의 고난이 이제 모두의(대규모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문자와 실제가 일치될 수 없음에 대한 자각이, 언어의 힘을 불완전한 방식으로(독점할 수 있다고) 자각하면서부터 생기는 묘한 마음이, 이제 더 이상 특별함의 표지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인터넷-읽기에는 문학을 읽을 때와 매우 유사한 조심성이 요구된다. 거짓이며 진실이고 진실이며 거짓인 것들을 상대해야 한다. 인터넷-쓰기는? 거기서부터는, 이건 그야말로 포스트 아포칼립스다. 하지만 생각하다 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차근차근 헤아리다 보면, 어떤 교육 가능한 규범들을 도출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순을 배워야 할까? 시간을 배워야 할까? 노이즈를 배워야 할까? 크기를 배워야 할까?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함을? 혼란을? 내가 나를 쥐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네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내 것은 없다는 것을? 풀어헤쳐지는 나를? 또는 너를? 거미줄 같은, 자본의 용납불가능한 지도편달을? 또는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라는 것을? 망해가던 세상에서 텔레파시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는 예행연습을 벌인 것뿐이고... 이 생각은 분명 누군가 했던 생각이다. 그게 나였나? 아니면 너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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