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후일담

K가 다 측량하고 난 뒤 사람들은 그것을 기원의 햇빛이라고 얘기했다. 저 너머의 성에서 뛰쳐나온 행렬들 이벤트는 다들 그 얘기밖에 하지 않았다. 모두 웃음 짓는 얼굴이었고 기뻐했다. 기념 리본을 매단 검은색 증기 리무진이 K에게 도착했다. K는 조수들과 함께 탔다. 그의 조수들은 경박스럽게 벌써 할로윈 복장을 입고 드문드문 이 분위기와 열기에 어울리는 흰소리들을 내뱉었다. K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했구나. 분명한 것은 전 날까지도 측량 작업이 이렇게 곧바로 끝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아하니 조수들은 그것을 미리 안 듯했다. 그것을 모른 건 여기서 K 혼자뿐인 것 같았다. K에게 판단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의 일에 깊게 몰두했었음이 이유로 여겨졌다. 나온 사람들은 K의 이름이라 생각되는 것을 연호하면서(K는 자신에게 그런 이름이 성 안에서 붙여졌구나 탄식했다) 노점을 열고 북적북적댔다. 증기 리무진은 아주 느린 속도로 천천히 나아갔다. 게다가 곧장 가지도 않고 사람들 행렬을 빙글빙글 돌기까지 했다. 성과 외부의 통신이 중단되었던 그런 단절로 말미암아 서로가 일종의 괴물들로 비친 것이라고 K는 생각했다. 내내 성 사람들이 K의 측량을 기다렸단 것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 말을 하는 조수들의 말에선 과장의 기미가 엿보였다. 그러나 밖을 내다보면 사람들의 기쁨이 솔직하게 증명되고 있는 순간이 계속되었다. 성은 그렇듯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순간 해방의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K는 기원을 열었다는 말들을 수첩에다 적어놓았다. 측량이 그랬다는 것인데, 어떤 맥락인지 알기가 어렵고 단지 거기 담긴 감정만이 진실된 듯했다. 그의 작업이 이렇듯 큰 기쁨으로 변질될 줄은 몰랐으므로 어정쩡하게 한 번 웃어 보이기도 했다. 묵빛의 증기 리무진에서 내리고 K는 성의 총독을 만났다. 그는 K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음번의 총독은 그대라고 선포했다. 그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수들은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측량이 단순히 완료되어서라기보단 어떤 정치적 공작이 있었을 법도 했다. 이들은 단순히 후계자가 생긴 것이 기쁜 특유의 고립된 문화가 가진 폐쇄성을 보이는 것 같았으며 그 이전의 얼개에 대해선 짐작할 수 없었다. K는 그럼에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째서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이 일들의 배후에 있는 것은 아까 만난 사람들의 기쁜 얼굴이었다. 그것을 부정하고 다시 어디론가 멀리 떠나기엔 그는 이미 이곳의 위정자가 되어 있었다. 지쳐 있었다. 물론 이 성에 오래된 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K가 그런 얘기를 꺼내자 총독은 자신도 그러했다 일러주곤 한 손에 포도주를 들고 총독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주의 깊게 듣지 않아도 괜찮다며, 자신처럼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여유롭게 듣길 권했다. 어려운 일은 다 끝냈으니 말이네(그것도 자네가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측량 작업이 중요했던 이유에 대해서 그는 인식의 나무에 열린 선악과를 언급했다. 판단하는 언어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 과실에 얽힌 뱀에 대한 얘기를(그들은 그 뱀을 신앙한다고 했다)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K의 드라마를 자신이 알았다는 것이다. K는 이 사람의 말이 왠지 낯설면서도 온유하게 자신의 과거 격정적인 시절을 품는 것 같아 마음이 빠져들었다. 왜 측량 작업이 기원후라고 말해지는 건지요? 전임 총독은 자신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운을 뗐다. 그리고선 그는 다시 인식의 나무에 달린 선악과 얘기로 되돌아갔다. 아마 그도 잘 알지 못하는 주제인 듯했다. K는 자신의 의아함을 해갈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쭉 진행해가도 괜찮을 듯싶었다. 그러면서 K는 하나의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대로 괜찮다는 것이 그랬다. 하나의 궁금증이 생기긴 했다. 측량이 그들에게 있어 필요한 외부의 것이었다면, 그것으로 인해 무엇이 바뀌게 된 걸까? 그 이전의 일들은 측량이 아니었던 걸까? 총독은 아까부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K는 듣고 있었고 마침 K가 궁금하던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그 측량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곳의 사람들이 마음껏 기뻐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진 땅이(총독으로부터 나온 것이긴 하지만) 생각하던 것보다 측량에 따르면 비싸게 매겨졌기에 그랬다는 것이다. K는 지나온 날들의 절망을 기억했다. 거기에는 기쁨도 함께 있었으나 앞으로는 그와 마찬가지로 슬픔이 함께 있을 것이었다. 평안함과 행복을 느끼면서 말이다. 총독의 제안을 애써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것 같았고 K는 그럴 생각이었다. 어차피 거부하기도 어렵게 된 것 같았다. 총독은 그런 K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운이 좋다고, 자네나 나나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K는 해골의 눈두덩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광경을 떠올렸다. 연말인 시기였고 그런 크리스마스가, 어릴 때 이후로 만나지 못했던 안온한 시기가 되돌아온 것 같았다. 총독은 수다스러웠고 그가 포도주를 마시는 일이 계속되었다. K는 그 사람이 술을 잘 못 마신다고 생각했다. 마셔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이가 건네는 포도주 잔을 받고 그는 좀 더 능숙하게, 과거에 익숙했던 것처럼 몇 모금을 목구멍의 어둠 안으로 넘겼다. 총독은 껄껄 웃으면서 그렇게 총독의 자리를 넘겼다. K는 방금까지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조금 취한 채로 뒤에 시립해 있던 사람을 시켜 조수들이 오게 했다. 측량사 K는 이들의 형식적 위치로 전과 같이 염두에 두고 은근히 사유하는 일 대신 아까까지 총독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을 시켜 포도주를 더 들고 오게 했다. 맥주도 가져오게 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았지만 전임 총독만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K는 후일 밀레나라는 가수를 전임 총독이 그 자신에게 그러했듯 후임 총독으로 임명했다. 그것은 전임 총독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절망이 눈에 띄어서였다. 확신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전임 총독은 당시보다 늙은 채로 두꺼운 토끼 옷을 입고 성 사람들 사이에서 할로윈이면 마시는 음료를 들고 있었다. K는 전임 총독과 후임 총독 사이에서 절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자신 이미 절망이 어느 한 시절의 집약된 것으로만 떠오를 만큼 무뎌진 다시 돌아온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K는 전임 총독이 그러했듯 밀레나에게 독특한 절망을 보았다. 이는 전임 총독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었을지 몰랐으나 인식의 나무로 거슬러 올라가면 맞는 결의 생각일 거라 생각했다. 밀레나가 후임 총독으로 정해졌으니 곧이어 사람들이 다시 기쁜 얼굴로 거리에 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녀가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어서일 것이라고, K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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