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9일 목요일

부고

내 친구들은 모두 죽거나 다치거나 불구가 되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부고는 여태 익숙해지지 않는다 부고를 반으로 접어 넣으니 네가 기억나지 않는다 망각이 아니었다면 우린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네 유언이 무엇이었는진 내가 입을 열 때쯤 기억나겠지


우린 아침에 괴로웠고 저녁엔 더 괴로웠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그 다음 날이, 그리고 그 다음 해가. 이렇게 우리는 미래를 앞세워 나아갔다

“절뚝이는 널 기다려줄 사람은 우리 말곤 없어 눈먼 너를 위해 길을 터줄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입을 열지 않는 너를 위해 하루가 다 가도록 너를 기다렸어 우린 네 유일한 친구가 되었어 네 입꼬리에서 내 존엄이 흘러내리도록 내버려둔 것도 우리였어.”

“그래 널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바로 우리였어.”

내가 사랑한 이들은 모두 미치거나 살해되었다 대기를 떠돌다 불타 죽었다 우린 찬 바다 위에서 불탄 너를 수습했다 단 한 번 멈춘 우린 다시 미래를 앞세워 너보다 훨씬 앞서 나갔다

그래 널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바로 우리였어

우리 절대로 죽지 말자, 우리 절대 미치지 말자, 우리 절대로 아프지 말자, 그러다 한 번이라도 멈추면 우린 끝장이잖아

네가 죽으면 나는 네 머릴 밟고 앞으로 나갈 거야 네가 죽으면 저 시체가 내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라 가슴을 쓸어내릴 거야 우린 단 한 번 너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너보다 훨씬 앞서 나갈 거야 네가 죽은 곳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나아갈 거야

난 결국 네가 될 거야.

넌 죽은 나를 발목에서 떼어내며 말할 거야 그때 내 유언을 너는 기억할 거야 내가 입을 다시 열 때가 되어서야 네 유언이 기억나겠지 그러니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우리 절대 다시 만나지 말자 그러지 말자 널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바로 나야.

그러니까

너만큼은 내가 잊기 전에 나의 부고를 써 보내주렴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