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곳을 비어있는 것들이 이어나간다
나는 침묵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방에
뚝뚝 침을 흘리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 안에는 아직 당신을 삼키지 못한 내가 있고
이곳을 지키는 것들은 여전히
당신이 늘어지는 순간들을 사랑하고 있어
당신이 굴리던 볼펜 끝에서 망가진 문장들이 흘러나오고 당신이 남긴 침묵과 나의 침묵 사이엔 낯선 영원이 태어나고
다만 이것은 오래된 일이어서
아직 나에게도 갓 태어난 소문인 일
왜 하필 당신은 사라지기를 사랑해서
당신처럼 이곳을 통과하려고
눈을 감아보아도 나는
여전히 아무런 미래가 없는
꿈으로밖에 가지 못하는데
이 사실을 어찌해야 해?
당신을 없애기 위해
조금은 혼잣말을 곁들여도 될까?
나의 일기장이 메말라 가는 동안에도
어디서든 어디로 이어지는 당신은
또 어딘가로 뻗어나가는 최선의 것
구부러진 약속과 망가진 희망이 이어나가는 당신의 릴레이
그러다 모순이 허기를 어루만지는 저녁이 오고
오랫동안 자라나는 당신을 바라보다 잠에 들었어
투명한 몸을 입고 온 당신이
더 이상 비어있지 않기 위해
어린 당신을 데리고 나간 것 같아
아마 바다나 안개 그런 곳으로
축축하고 끈적이는 아침
포옹이었던 것들이 벽지 위에 찰랑인다
밤새 오래된 이야기를 지키던 아름다운 단어들이 이제 이곳의 공기가 되겠지 더 이상 우리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약속이나 비밀이 되며 망가질 필요도 없이 구석구석 가지런히 흔적이 죽어가는 친밀한 현실 속에서 고요하게 잠든 완벽한 기억을 봐 도무지 이것은 이야기처럼 보이질 않을 거야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당신을 상상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