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일 금요일

샌드박스

회관의 한 구석을 독점한 노인은 유독 성격이 고약하다. 언제 와 보아도 그는 있다. 스물다섯 쌍의 눈 가운데 절반이 붉고 절반이 푸르다. 예의상 묘사는 생략하겠지만 어떻게 보아도 누더기인 복색을 그들 문화권에서는 가장 현명한 존재만이 몸에 걸칠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서 온 이를 그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그것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알 길이 없지만 굳이 검증할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그는 양질의 정보 제공원이다.

회관은 내가 조수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어야 할 공간이지만 동시에, 끝까지 그를 데리고 오고 싶지 않은 공간이기도 했다. 회관은 [사거리]의 어느 이사분면에 있다. 유한차원 문화권 출신인 내가 유한차원 문화권 출신 청중에게 [사거리]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층층이 겹친 차원들의 차원. 정확하게 상상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하지 않을 리가 없으므로 오히려 마음껏 상상해 보기를 권하곤 한다. [사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거리]를 경유해야 한다.

노인은 늘 하듯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상자 속은 막 여름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 인사를 건네기 직전 노인은 작은 물조리개로 상자 귀퉁이에 홍수를 일으켰다.

내가 노인과 대화-노인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동안 조수는 노인이 하던 것처럼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대화 중간 조수를 돌아보며 그걸 건드리면 너를 천 번 하고도 일곱 번 무로 돌려보낼 것이다 라고 했는데 조수에게 그 말은 염소 울음소리와 아주 흡사하게 들렸을 것이다. 나는 조수에게 노인의 의사를 전해주었다. 조수는 거래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노인은 실망한 눈치였다. 회관에 처음 발을 들인 이에게 상자를 보여주고 만지도록 유도해 놓고 길길이 뛰며 화를 내는 것이 그의 취미였다. 트집을 못 잡은 것이 분했는지 노인은 거래가 끝난 직후 상자 속을 손으로 마구 헤집었다.

상자는 대략 반 뼘가량의 깊이에 가로세로 각각 두 뼘 너비이며, 투명한 재질로 된 뚜껑은 원기둥을 반으로 잘라 붙인 형태로 되어 있다. 상자 속의 지적 생명체들은 단일한 문화권을 이루고 있어 지도자 겸 제사장의 위세가 대단하다. 상자 가운데에는 그들이 천 년 하고도 칠 년간 쌓아올린 반의 반 뼘 높이 제단이 있는데 거기에 가을마다 새로 빚은 술이 올라온다. 술동이는 인공눈물용기보다도 작지만 (물론 상자 속의 지적 생명체들에게 그것은 대략 한 해 동안 땀 흘려 빚은 거대한 제기일 것이다) 다른 잔에 술을 따라보면 밤새도록 흘러나온다.

노인은 정말 보기 드물 만큼 (박물학자가 이렇게 말할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성질이 고약하지만 이따금 상자에서 거둔 술을 병째 건네주기도 한다. 보기보다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서가 아니라 제단에 올라온 술을 제때 거두지 않으면 상자 속의 지적 생명체들이 슬퍼하기 때문이다. 제수품이 겨울까지 사라지지 않으면 그들은 신이 노하셨다고 믿으며 술동이를 깨뜨리고 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제단을 피로 물들인다. 상자 속의 사계절이 한 번 도는 데에는 우리 기준으로 3시간 40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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