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반도 처리 못한 곤란한 책 박스가 집구석에 놓여 있다. 다들 처치 곤란한 책들 때문에 시름하고 있다. 주는 일에 별 기쁨 없다. 유쾌한 내용도 아니고... 애초에 출판사에 보내지 마시라 했어야 했다. 알라딘 가져가서 팔까? 팔리긴 할까? 요즘 잘 안 사준다던데...
저번에는 사인본이 필요하다 하시기에 퇴근하고 ㅁ사에 갔다. 역지사지로 저자들이 사무실 찾아오는 거, 심지어 그 시간에 그러는 건 여간 죽이고 싶은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책 박스 들고 다니면서 씨름할 시간도 없고, 어쨌든 한번 가보고 싶은 맘도 있었다. 다들 이런 마음으로 그랬던 거겠지... 그런 마음으로 찾아간 ㅁ사는 그야말로 혼곤해지는 동네에 있었다. 가는 길에 스콜이 쏟아졌다. 회의실 같기도 하고 포장실 같기도 한 방에 앉아서 사인이란 것을 했다. 그런 시간까지 저자라는 녀석들을 기다리고 심지어 밥도 먹여야 한다니... 교정공의 그것과는 또 다른, 편집자들의 노고(내가 싫어서 도망쳤던)를 새삼 느꼈다. 그래도 난 저자 새끼들이랑 직접 부대끼지는 않아도 되니 다행 아닌가? 예전에 딱 1년 1대 사장님을 모셨던 때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 은퇴한 판사라는 녀석이 자비 시집을 내는데...
어쨌든 진짜 문제는 이제 이 연재를 어쩔 것인지다. 그냥 완결을 낼 생각은 없다. 일 같은 일이란 게 다 그렇듯 출간도 기습당하듯 일어난 일이다. 내 비틀린 욕심을 거슬러 ‘인간적’인 책꼴을 위해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러면 내가 원래 쓰려던 것은 뭐였냐? 세상은 이렇게 열심으로 망해가고, 저마다의 아우성 악다구니로 가득하고 자욱한데... 대체 뭘 쓰려고 했었지? 침착해라... 겁먹지 마라... 생각을 다시 해라... 너무 어려우면 쉬운 것부터 해라...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가라... 어려운 것에서 쉬운 것으로 가도 좋다... 그 이상을, 그 이상을 해라...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해야 한단 말인가? 쉽다면 뭐가 쉬운 것이며 도대체 어떻게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간다는 말인가? 교정공기라고? 뭐지? 뭐였지?
어떤 일은 끝나야 알게 된다. 실마리를 풀기 위해 재밌는 이야기를 하자. 나는 교정의 악마를 생각하고 있다. 그 악마는 요정의 반대편에 있다. 完全校正완전교정을 가능케 하는 존재다. 한 자도 한 틈도 틀리지 않았다면 그 책에는 교정의 악마가 강림한 것이다. 말이 변하는 것이므로 그것도 잠시간이겠지만, 그럼에도 그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다 인간의 일인데 어떻게 불가능하겠는가! 다만 (역시 악마적으로) 등급이 매겨질 뿐이다. 이 책이 바로 19XX년도에 교정의 악마가 강림했던 바로 그 책, 단 한 권의 책입니다... 이건 틀리지 않았나요? 그때는 맞았습니다... 페이지가 많진 않군요... 스타일이 복잡하진 않군요... 문장 자체가 단조롭군요... 재단이 비뚤지 않나요? 이것이 교정의 악마다. 그렇다면 교정공은 교정의 악마를 강림시키려 노력해야 할까? 전혀 아님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악마는 악마를 가리키는 손끝에 도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