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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7일 수요일

시인의 방법

에무시네마에서 기획한 짐 자무시 영화 <패터슨> GV ‘시인의 방법’에 참여했다. 무슨 내용의 영화냐고 묻는다면 미국 뉴저지 주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이 일상을 보내며 시를 쓰는 이야기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극 중 패터슨이 쓴 글 중에서 펌킨이라는 시가 인상 깊었는데 “나의 작은 호박, 난 이따금 다른 여자들을 떠올리는 걸 좋아해, 하지만 사실은 말이야 당신이 날 떠난다면 나는 심장을 뜯어내고 다시 되돌려 놓지 않겠어, 쑥스럽군” 하며 적는 부분마다 달콤한 여린 속을 사각 파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패터슨에게 호박이 있다면, 내게는 뭐가 있을까 싶어서 최근에 발표한 시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번 기획은 시인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시가 하루를 어떻게 나아가게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고 했으니까.


땡초는 우스운 발음
너는 땡초김밥을 집어 먹으며 먼 미래를 생각한다

땡초의 속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우리는
단단한 과육의 알싸한 고추를 곱게 짓이겨 삼킨다

태양에 잘 말린 고추를 밥에 감아서
다시 혀끝으로 땡땡한 우리의 영혼 속으로

집어 넣는다

웃겨 하지만 눈물 나

우리는 눈물이 나는지 웃긴지도 구분 못하는 사람들

너는 일터에서 뒤집힌 속을 달래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차마 땡초 때문에 아파서요 이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사각지대를 찾는다

식은땀이 흐르는 미래가 작은 것에 있었고 뜨거운 고독이 고추에 있는데 영혼이 이런 보잘것없음에 무너진다면 어떻게 하지 싶어서

고추도 더 깊게 사각지대를 찾는다

제가요 땡초김밥을 먹다가 죽을 뻔했는데요

이 말을 차마 하지 못한
노동자의 웃김과 슬픔의 스코빌 지수를

땡초는 조금 알고 있을 것이다


「땡초」 전문


일터에서는 아프다고 말하기 애매한 지점이 있다. 적어도 다들 날이 서 있을 때, 땡초라는 발음을 하고 울어버릴 수는 없다. 내게 품위라는 게 있다면 이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날 나는 숨어서 일을 마저 끝냈지만 조금 억울한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패터슨 영화를 보고 말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시인의 일상은 어떻게 꾸려지는가.
시인들에게 고요함과 시간은 언제 찾아오는가.

이런 질문을 들으며 나는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발을 관찰하고 있었다. 다리가 길어서 제대로 구부리지 못하는 사람, 발과 발을 어긋나게 걸친 사람, 한 발은 쫙 펼치고 고개를 비스듬히 한 채 듣는 사람. 사람들이 낭독을 듣고 있을 때, 나도 보기 마련인 것이다. 그때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발의 얼굴로 시를 쓰면 좋겠다 싶었다.

“제가 여기서 발의 자세를 계속 보았는데요. 언젠가 남기려 해요. 누구의 발인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행사가 끝나고 사인을 요청한 분이 내게 말했다.

“땡초 시집 꼭 살게요”

땡초는 우스운 발음이지만 들으면 속이 얼얼하다. 가장 최근에 쓴 거라 시집에는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땡초 시집이 나왔어요, 하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2020년 10월 6일 화요일

어떤 이야기예요?



산문을 쓴다고 했을 때 그는 어떤 이야기냐고 물었다. “만났다가 헤어지는 이야기예요.” 그가 “재밌겠다.” 말했다. 나는 유자 맥주를 마시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줄 안 모양이었다. 나는 헤어지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인지라 고개를 갸웃대다가 “본인 경험 말해주면 적을게요.” 말했다. 뒤에서는 감바스를 끝내주게 하는 법에 대해서 논쟁이 붙어 있었다. 통마늘이 끓기 시작할 때! 나는 말이야, 간식처럼 먹는다고.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는 목검을 쥐고 어둠 속에 서 있던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다. 집에 돌아갈 때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며 잘 가, 라고 말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생각하기로 했다. 인사 없이 헤어진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기간도 정해보기로 했다. 등단을 한 지 꼬박 십 년이 됐으니까 그때부터 지금까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좋겠다 싶었다.

전화로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동기가 생각났다. “언니, 나 어떡해.” 사랑이 깨지고 그가 소리 내어 울었을 때 듣고만 있었다. 곰 세 마리 노래를 부르며 덩실덩실 엉덩이 춤을 추던 아이들도 생각났다.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자잘하게 헤어지는 것에 익숙한데 괜찮은 줄 알았다가도 불쑥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줄 모를 텐데 무한한 신뢰를 보여준 편집자님도 생각났다.

시인으로, 가끔은 아이들을 만나는 강사로 매주 백여 명 정도의 사람을 만난다. 매일 8시간의 업무를 보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제야 이들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겠다고 결심이 섰다. 

어디선가 통마늘 끓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2020년 10월 4일 일요일

탄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언어를 알아가는 것. 새의 이름을 소리내어 암기하는 것. 높고 깊은 휘파람 소리를 듣고 새의 시선을 떠올리는 것. 지금 그의 목덜미에 달라붙은 벌레의 딱딱한 등갑을 건드려보는 것.

지렁이가 기네요. 뻔한 말을 물수제비 뜨듯 상대방에게 던져보는 것. 청둥오리의 물장구 사이에 있는 붕어의 입을 오래 바라보는 것. 저 붕어는 오리를 삼킬 수도 있겠어요. 트랙을 떠도는 말과 말 사이를 밟아보는 것. 귀와 어깨를 멀리 하고 턱을 당겨 힘주어 걸어보는 것.

탄천을 산책하며 생각했다. 개미, 지렁이, 볕, 자전거, 개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구나. 살아있는 것도 조금은 그럴싸하다고. 동방삭도 이런 마음으로 삼천갑자를 살았던 거 아닐까. 그러다가 실없이 숯을 씻었던 이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끝내 건드려본 거 아닐까.* 

점심시간, 벤치에 앉아 새의 기척을 찾는 것. 이건 호랑지빠귀 같아요. 광공해에 부딪힌 새를 보다가 “새들이 토마토였다면 사람들은 바뀌었을까요?” 끝끝내 질문하고 마는 것. 

만나자마자 이별한 여름새, 그게 우리의 목소리 같았다. 





*삼천갑자 동방삭. 대략 18만 년을 살았다. 동방삭을 잡기 위해 저승사자들이 숯을 얻어 시냇물에 빨았고 그 모습을 본 노인이 삼천갑자를 살아도 이런 꼴은 처음 봤다고 말을 걸었다가 덜미를 잡혀 끌려갔다고 한다. 그 장소가 탄천이다.



2020년 10월 3일 토요일

헤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느 날, 작은 병원에서 한 인터뷰를 보았다.

“여기처럼 조그만 도시에선 한 사람의 죽음도 꽤 큰일이에요.”*

가끔은 익숙한 사실이 나를 의아하게 만든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 지금 마시는 커피에서 정직하게 커피 맛이 나는 것, 결국에는 모두가 너무 사람 같아서 아무도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없는 것.

산다는 건 만난다는 말이고 결국에 헤어진다는 말이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조그만 도시에서 벌어진 큰일처럼 느껴진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당신을 만나고는 그런 결심을 하고 적었다.


*넷플릭스 <판데믹:인플루엔자와의 전쟁> 인터뷰.
*이 산문집은 3년 전에 계약한 것이다. 일일 연재를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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