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구인 라울 미돈은 얼마간 기다린 뒤 관람차에 올라 2인용 의자에 양다리를 걸쳤다. 관람차가 어느 정도 상승한 뒤(지금은 계속 더 올라가고 있다) 저 멀리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낸 야경이 보였다. 같이 관람차 타기를 거부했던 스테이블리가 저 아래서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관람차가 가장 드높았을 때 라울 미돈은 졸다가 가벼운 잠에 들기 직전이었다. 스테이블리는 라울 미돈이 관람차에 타고 난 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굳이 위를 올려다보진 않았으나 라울 미돈이 타고 있는 관람차가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고 이제 어느 정도까지 내려갈 것인지는 곁눈으로 보고 있었다. 스테이블리는 그 남자가 안에서 잠들 거라 확신했다. 스테이블리와 라울 미돈은 각각 밤을 이 잠시 동안 느꼈다. 라울 미돈이 독백했다. 혼자군. 스테이블리도 마찬가지로 독백했다. 혼자군. 그 다음 라울 미돈이 독백했다. 우린 서로 외롭지. 그 다음 스테이블리가 독백했다. 우린 서로 외롭지. 아니, 외롭지 않아. 그런가?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 관람차가 어디 있는지를 보고 있지? 눈에 보이니까. 넌 보이지 않는 것도 의심하잖아. 글쎄, 곁눈을 뜨고 보면 보이던걸. 라울 미돈은 다시 독백했다. 사랑해. 스테이블리가 독백했다. 나도, 자기. 아파트 야경이 멋지더군. 자기도 봐야 해. 그 관람차에 혼자 타란 소리야? 같이 탈 수도 있겠지. 혼자 타거나. 나도 다시 그 야경을 보고 싶으니까. 그게 뭐 별거라고. 별거라니. 비좁을 텐데 괜찮겠어? 같이 타도. 그건 알아. 당신의 그 점을 난 충분히 알지. 우리가 그만큼 오래되었던가? 라울 미돈은 오래된 연인에게 보내는 독백을 시작했다. 지금은 야경이지만, 이런 것 말고 그때 우리가 봤던 일몰 기억해? 스테이블리가 지상에서 라울 미돈이 탄 관람차를 올려다보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주위에서 관람차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스테이블리를 쳐다봤다. 기억해! 라울 미돈이 안에서 혼잣말을 했다. 그는 휴대폰으로 스테이블리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스테이블리는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사랑해, 기억해! 관람차 안에서 라울 미돈이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그 안에서 외쳤다. 자기, 이제 내려가! 그 일몰을 기억해둬! 스테이블리가 전화를 받고 말했다. 자기, 그 일출은 기억해? 라울 미돈이 다시 가슴을 탕탕, 주먹으로 두드리며 럭비 선수처럼 말했다. 속지 않아! 그건 다른 여자랑 봤던 일출이라고! 스테이블리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말했다. 자기는 좋은 남편이 될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라울 미돈이 관람차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 프러포즈는 성공적이었다. 저 멀리 아파트에 켜진 모든 불들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켜진 불들이 켜졌다 꺼졌다 하고 있는 것은 정전의 조짐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조금 멀리 떨어진 이 놀이공원은 최악의 경우라 할지라도 비상 전력 공급망이 있을 터였다. 관람차는 멀쩡히 잘 내려갈 예정이고 라울 미돈은 곧 내려가서 스테이블리에게 뛰어들어 포옹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보이던 아파트 단지의 불이 까맣게 꺼졌다. 정전이었고, 이 밤의 마지막 퍼즐 피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