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6일 목요일

속, 동지들과 여섯 개의 비유

피와 해골 신도


그리고 이제 피는 쏟아져 있다. 비명 사진처럼 쏟아지자마자 굳어 가고 있다. 동지는 손바닥으로 피를 그러모은다. 동지의 시뻘건 손은 굳어가는 피를 제단에 바른다. 아니, 제단에 올리려 하는 것 같다. 피는 제단에서 죽는다. 그다음 잘 마른 해골을 새하얀 그대로 제단에 올려야 한다. 씻을 곳이 없기 때문에 동지는 손을 쳐들어 말린다. 자신을 겨눈 총구를 앞에 둔 듯. 시원한 바람이 젖은 손가락 사이로 지나간다. 해골의 눈구멍은 머리 없는 동지를 향해 뚫려 있다.


지옥에서 밭 갈기


그리고 이제 동지는 괭이 자루 끝을 양손으로 누르며 턱을 괴고 서 있다. 밭 가운데서. 얼마나 일했는지 보기 위해서인지, 얼마나 더 일해야 하는지를 보기 위해서인지, 이쪽저쪽으로 흔들거리는 동지는 곧 무너져내릴 것처럼 위태롭다. 밭은 더할 나위 없이 기름지고 비옥하다. 동지가 자신의 피와 림프를, 근육과 장기를 거름으로 흘리면서 갈아놓았기 때문이다. 뼈 동지는 밭 가운데 그대로 서 있다. 그곳에는 씨앗도 날씨도 없다.


핵 광야의 피케팅과 라디오 방랑


그리고 이제 짙은 방사능 안개도 헤치고 온 동지를, 그 일이 쓰러뜨린다. 갑자기 도시에 다다라 놀란 표정의 군중과 만나는 일이. 동지의 라디오 방랑은 그렇게 끝난다. 동지의 놀란 얼굴과 함께.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목소리도 거짓말처럼 멎고, 드디어 벗어 본 널빤지 위의 글자는 이미 다 바래서 한 획도 남아있지 없다. 동지는 자신이 옳고 그름을 가리는 지옥을 통과해 온 것인지 드디어 지옥에 도달한 것인지 궁금하다. 아무것도 통과하지 않았고 아무 데도 도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동지의 텅 빈 머리통 속에서 윙윙거린다.


연자매


그리고 이제 동지의 얼굴로 비린내가 훅 끼쳐 온다. 맷돌 위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못 본 틈에 쥐라도 뛰어든 걸까? 거적떼기를 걸친 또 다른 동지가 쫓기듯 방앗간에 들어온다. 자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표정이다. 그렇지, 교대를 하러 왔구나! 새로 들어온 동지는 묻는다. “혹시 선생님을 보지 못하셨소?” 이건 또 무슨 타령인가? “누가 당신의 선생이오?” “쥐... 쥐가... ” 이 동지는 머리가 약간 이상해진 것이 분명하다. “헛소리 말고 교대하시오. 당신의 선생은 방금 막 저 사이에서 으스러진 참이오. 불쌍한 선생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이 채를 힘껏 미시오. 내가 줄곧 이 방향으로 밀었으니 당신은 이 방향으로 미시오.” 해방된 동지는 방앗간을 나서기 전 양동이에 든 숯덩이들을 매 위에 쏟아준다. “선생은 반드시 되돌아올 거요.”


불타는 들판


그리고 이제 재가 된 들판에 숯덩이 일곱 개. 하나는 커다랗고 둘은 둥그렇고 다섯은 길쭉하다. 둥그런 것 하나를 발로 차보는데, 뜻하지 않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그것이 동지가 들고 있던 양동이였음을 뒤늦게 안다. 남은 일곱 개의 숯덩이를 양동이에 주워 넣는다. 채 다 들어가지 않아 발로 밟아 바숴야 한다. 아홉 개로, 열한 개로, 그 이상으로. 온통 검댕이 묻는다.


늪괴물


그리고 이제 동이 트며 비가 내린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