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6일 월요일

네이티브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라는 말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소식은 한 가지뿐이다. 방금 내가 이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 골목에서 본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렘린, 우리말로는 무엇으로 옮겨야 할까? 파물귀(破物鬼), 망깨비 정도의 대체어를 쓸 수 있겠다. 그렘린이라는 이름은 서양에서 최초 발견된 장소에 고블린이라는 명사를 합성해 만든 것이다.

즉 좋은 소식이란 박물학자인 내가 마침 머무르던 곳 인근에서 저 유명한 괴동물을 직접 발견했다는 것. 물론 나쁜 소식은 지금 이 소식을 전하는 도구를 비롯해 많은 기계들이 더이상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파물귀가 기계를 파괴하는 이유와 그들의 생태에는 전혀 관계가 없다. 쉽게 말해 그들이 기계를 먹고 산다는 세간의 믿음은 오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파물귀를 좋아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오로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그들은 기계의 고장을 유발한다.

러다이트 운동의 발화점을 누구로 알고 있는가? 질문을 조금 바꿔야겠다. 러다이트 운동을 시작한 것이 인간일까?

고장난 기계가 그들에게 어떤 기쁨을 주는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인간이 불편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아님은 확실하다. 이런 생각은 너무도 인간중심적이어서 낯이 뜨거워질 정도다. 일반적으로 파물귀들은 인간에게 우호적이다. 고장낼 기계를 만들어주는 존재를 미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다만 기계고장을 직접 막으려 할 경우에는 적대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므로 최대한 피하기를 권하고 싶다. 비행기 엔진을 물어뜯을 수 있는 턱힘을 지닌 존재와 대치하는 것은 조금도 용감한 행동이 아니다.

추정컨대 파물귀들은 기계의 멈춤 자체에서 크나큰 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크고 구식일수록 좋아하며, 무릇 ‘스마트’라는 수식어를 지닌 현대의 기계들을 미워한다. 인간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듯 느껴질 수 있다. 너무 좋아서 고장내기도 하고 너무 싫어서 망가뜨리기도 한다. 예방 삼아 개인용 기기 주변에 초콜릿이나 사탕을 한두 개 놓아두면 좋다. 안타깝지만 윤전기나 사다리차의 고장은 그따위로는 막을 수 없다.

현재 내가 체류중인 곳은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상권이 조성된 소도시로 파물귀를 흔히 볼 수 있을 만한 환경이 아닌데, 현지인의 안내에 따르면 인근에 공장 지대가 있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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