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토요일

건물과 구조

 

건물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건물 한가운데 홀이 있고, 홀이 지붕까지 향하고, 지붕은 유리 같은 , 비닐하우스에 쓰이는 비닐 같은 걸로 덮여있다. 홀을 둘러싸고 방들이 있다. 방들의 창문은 쪽으로 있다. 그래서 홀에서 나는 모든 소리는 공간에 울려 퍼지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홀에서 나는 모든 대화 소리가 들린다. 홀에서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그들은 단체로 듯하고, 단체가 아니면 사람이 같이 듯하다. 나는 왠지 주인에게 속은 듯한 기분으로, 그가 나에게 어딘가를 추천해 주고, 그곳에 갔다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돌아왔는데, 왜냐하면 속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니 다른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고, 나는 배가 아프다고 해서 아침을 먹고 지금까지, 저녁까지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에 앉아서, 사람들이 식사하면서 하는 소리, 주인이 그들에게 아첨하는 소리(나에게는 그렇게 들린다) 듣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만약 프랑스 사람들이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프랑스어로 말한다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왜냐하면 자신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로 말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들의 백인성, 하지만 그건 사실 그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지, 피부가 하얀 것이 백인이 아니다, 그들의 백인성을 닮고 그들처럼 되려고 하고 그들처럼 말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백인성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백인성, 너무 당연한 듯이 자신의 식민지였던 곳에 가서 이곳은 저렴하구나 하면서 프랑스어를 하면서 프랑스에서 하듯이 바게트를 먹고, 왜냐하면 자신들의 식민지였으니까, 그곳에도 내가 매일 먹는 바게트가 있겠지, 그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와인이 있겠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너희들의 입맛에 맞춰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모든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모로코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배워야 하고, 나는 모로코에 가서 자랑스러운 모국의 언어를 것이며, 바게트를 먹을 것이고 저녁에는 와인을 마실 것이며,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것이며, 모로코 사람의 농담에 재미있는 사람이군 하며 웃을 것이며, 그를 친절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좋은 리뷰를 남길 것이며, 모든 것이 당연하게 생각된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다.


2024년 3월 25일 월요일

말하는 책

 


이 책은 아는 사람이 준 책이다. 아니다, 아는 사람이 나에게 준 책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준 책을 빌리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혼자 출판사 등록을 하고 혼자 책을 썼다. 그런 경우 가운데 어찌어찌 잘 알려지게 되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게 된 그런 책이다. 나는 갑자기 이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이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자마자, 첫 문장을 읽자마자 그 사람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몇 번 듣지 않은 목소리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를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이 책이 그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 사람을 판단하려고 한 건 아니다. 그냥 궁금했고, 억지로 읽을 생각도 없고, 하지만 책을 읽기가 어려운 건 책이 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책과 너무 가까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다시 말하면 그 책에 쓰인 모든 것을 내 일처럼 읽을 수 있다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에 집에 있는 일요일 같은 날 문득 다시 읽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24년 3월 24일 일요일

아침 같은 것

꿈에서
꿈으로만 남아 있는
다수의 미완성 물체를 완성했다
예를 들면 귤 하나를
귤 더미로 쌓아올렸다
희미한 귤빛 하나가
눈부신 귤빛 더미가 되어
무엇이든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꿈에서 정신을 차리면
눈꺼풀 아래가 깜깜한데
그 안에서 빛을 보았다는 게
꿈의 거짓말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던
귤 하나
눈앞에서 딱
정지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귤 더미를 쌓을 차례라고
눈에 조금 묻어 있던
꿈이 말해주었다
이제 일어나서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2024년 3월 13일 수요일

등장인물

 


지난주에 그 영화를 다시 봤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본 영화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떤 인물을 눈여겨보면서 영화를 보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다른 인물을 눈여겨보면서, 영화를 끊임없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의 모든 사람이 다 되어볼 때까지 말이다. 물론 그러려면 영화를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되어본 뒤에는 A길로 돌아갈 수도 있고 B길로 돌아갈 수도 있다. A길은 도로와 가까워서 차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건물의 열린 창문들로는 울리는 전화벨을 들을 수 있다. 걷다 보면 그곳에 나무가 많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고, 정신을 차려보면 그곳이 여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걷다 보면 매연에 숨이 막힐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은 이름은…… 아마도 상자와 비슷한 종류의 이름이었다. 아무튼 그 이름을 듣고 병을 담는 상자가 생각난 건 사실이다. B길은 조금 더 외진 곳에 있다. 그곳으로 가면 아무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 B길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 B길을 지양하기도 한다.

2024년 3월 11일 월요일

벽장 속의 드래곤

어젯 밤에는 벽장을 잠근 자물쇠가 달그락거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잊을 만하면 있는 일인데, 가끔은 며칠 동안 저러기도 한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영원히 벽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이야기하려 정리해보았지만 마음처럼 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요즘은 새로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이들에게 적응해야 했다. 겨우 퇴근 후 몇 시간을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를 찾은 것도 입사 후 반 년이 지나서였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모처럼 돌려받은, 아니면 요부에나와보시카의 생에 처음으로 얻은 여유를 도려내어 방 안의 벽장에 대해 정리하기 위해 쓰기로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제 그 일은 영원보다 좀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번에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매번 조금씩 가까워졌는데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지금은 손에 잡힐 것 같다. 그 모든 이야기가.

2024년 3월 9일 토요일

가속장치 같은 것

안개 속을 걷듯이, 안개 속이 미어지듯이,
그러다 미어터진 안개 조각이 내
발밑에 툭 떨어져 있듯이, 그건 누가
흘리고 간 검은 증기……
그러나 내 마음은 가속, 지금 말고 이따가 와
터진 자루를 꿰매야 하니까
얼어붙은 연못에도 양떼가 모이니까
죽은 자의 부활도 믿어버리는 마음으로
내 어금니를 내가 깨뜨린다
새벽의 검은 수박을 사서
검은 모범 택시를 잡아 탄다
나는 달린다 또
달린다 내 마음은 가속,
지금 말고도 작고 미묘한 일들은 계속
일어나는데 너는 모르겠다,
모르겠단 말만 백 번
하는 사이에 이것도 모르겠다면
앞으로는 알아볼 수도 있는 일을 할게, 계속해서
알아봐주길 바라며 내 마음은 가속,
지금 말고 이따가 와
아무리 해도 자루가 터지니까
여기선 잦은 안개 조심
택시에서 내릴 때
수박을 떨어뜨리고 마니까
조심하지 않으면 산산조각나고
바닥에 검은 물이 흥건하니까
한편 안개는 좋겠다
네가 좋을지도 모르겠다
안개가 다 쏟아지면
나는 빈 자루를 갖고 논다
그때쯤 너를 부를게
네가 올 테니까,
그러니까 이따가 와
그러면 네가 올 것이다

2024년 3월 7일 목요일

무명용사

애초 혼란한 원고를 준 녀석에게 교정을 보시라고 뭘 줘 봤댔자 혼란한 교정을 해 올 뿐이다. 대체로 봤을 때 제대로 고칠 능력이 있으면 애초에 그렇게 쓰지도 않는다. 사장은 ‘그냥 교수가 해 달라는 대로만 하라’ 하지만, 그런 것은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나는 대체 뭐 하러 있나? 오늘은 옳은 로서를 틀린 로써로 죄 고치라 표시해 놓은 끼새수교 때문에 위가 쓰리다. 자신감 있으셔서 좋으시겠어요... 나는 위장에 빵꾸가 나려 하고 있는데... 제발 좀... 그런 거는 내가 할 테니까... 사전 한 번만 찾아보면 다 아는 그런 거를 왜... 왜 모르면서 아는 척하니 왜... 제발... 너네는... 지성의 담지자가 아니고... 이런 거는 그냥 아가리 쌉치고 있어... 제발... ㅅㅄㄲ들 진짜... 그만... 단도 들고 찾아가기 전에...

뭐 그런 험한 생각을 속으로만 하며, 도대체 무엇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 나는 나의 직업적 특성상 증오해 마지않는 그들의 얼굴(신기하게도 꼭 얼굴들이 어디 내걸려 있는데)을 들여다보며 단서를 찾아보려 하지만, 그저 보통 사람의 얼굴이 있을 뿐, 사진으로 알 수 있는 건 없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뛰어난 학자이며 좋은 이웃사람일지 모른다. 아주 개차반 같은 녀석이라고 욕하는 글도 가끔 찾지마는, 어디 다 그렇다고 할 수야 있겠는가. 문제는 분명 그들의 존재양식에, 세계에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안 된다. 내가 견딜 수 없다. 그들도 피해자입니다! 암요! 이건 다 그들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지 않으려는 내 잘못이다. 그렇다. 내 탓이다!

내가 입사하기 전, 어떤 교수 녀석이 □□□이라고 틀리게 쓰려는 걸 끝까지 □○□으로 고치려다 대판 싸우고 퇴사한 교정공이 한 명 있었다고 들었다. 그는 단 하나의 자음, ㅇ을 ㄱ으로 옳게 고치기 위해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우리 같은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노동 그 자체를 걸었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은 그의 불굴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로써와 로서 따위에서 물러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그의 얼굴은 물론이요 이름도 모르지만 그는 오늘 무명용사 되어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 잘못된 교정을 다시 옳게 되돌리며, 나는 그 무명용사가 왜 교수와 대판 싸웠는지 이해한다.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이해한다. 그것은 글자의 옳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혀 아니다.

2024년 3월 5일 화요일

우리가 사는 방식 같은 것

너는 사자를 기다리는데
사자를 기다려서
사슴이 와도
사슴을 보내고 사자를 기다린다
나는 사자를 기다리는데
사자를 기다려서
문 앞에 사슴을 놓고
사자를 기다린다
높은 어둠 속에서는
잘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희박해진다
옷에는 얼룩덜룩
낮에 본 빛과 사랑을 묻히고 있다
검은 종이에
검은 글씨로
그것들에 대해 쓴다
아무에게도 안 보일 테니까
아무렇게나 쓴다
무언가 열심히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한 듯한 주말처럼 시간이 간다
너는 그동안 밝게 빛나는 전구처럼
공중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다
그 뒤로 너를 보는 일 앞에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네가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너는 흔들린다
많이 기다려서 예쁘네
서러워서 빛나네
내가 고함을 지르자
너는 깨져버린다
사자가 왔을 때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고
사자는 날카롭게 흩어진
죽은 너를 밟아버렸고
나는 도망가버린 상태였다
우리라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부끄러워졌다

2024년 3월 3일 일요일

교외 식당 같은 것

구슬픈 음악이 나오는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는다 벽에는
환호하는 손흥민과 박태환의 대형 사진이 붙어 있다
진열장엔 온갖 트로피와 인삼주…
새벽 세 시
우리 중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카운터의 박하사탕 그릇 옆에는
세라믹 소재의 리트리버 가족이 놓여 있다
은은한 빛을 내는 보라색 자수정 램프가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우리 테이블 번호는 25번 그러나
테이블이 스물다섯 개나 있는 식당은 아니다
사람들은 숟가락을
잔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가끔 한숨 쉰다
이제 나는 이들 중 한 명이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도
감히 못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 자신이 없을 뿐
우리는 황태해장국을 먹는다
서글프고 낯선 그러나
우리 중 누군가는
알 수도 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러다 절정에서 갑자기
모두의 숨소리가 멎는다
지금 뭐가 여길 지나간 것처럼
서로 눈을 마주친다
주인이 잠깐 홀에서 사라진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좋다
손흥민과 박태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이에 뭔가

2024년 3월 1일 금요일

국립현대미술관 앞을 지나가는 개 같은 것

국립현대미술관 앞
을 지나가는
떠돌이 개

개에게는 미술관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들어갈 수 없는 상자거나
멀리 돌아가게 만드는 벽이겠지만
사람들은 ‘미술관 앞을 지나가는 개’
의 사진을 찍는다
귀여우니까
너무 보기 좋으니까

현대미술?
지나가는 개랑 저
안에 있는 것들이랑
남몰래 겨루는 전쟁술

개는 최소한
사람들의 지루함에 길을 내준다
즐거움을 보여준다
저 개는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미술을 전혀 모르는 개
미술이 전혀 모르는 개
그러나 미술관 앞을 지나가는 개는
미술관에 연동되어 버린다

일군의 행인들이 지나가고
아까와는 다른 이들이
개의 사진을 찍는다
개의 삶에 접근하려고

요 귀여운 댕댕이 사진을
해시태그 미술관
해시태그 댕댕
SNS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사진 속의 개는
미술관 앞을 지나가면서도
미술관 앞에 계속 있다

‘계속 있다’는 게
계속되는 상황 속의 개
참고로 이곳에서는
《개를 위한 미술관》(2020)
이라는 전시를 연 적이 있다

이 개는 아마도
전시를 본 적이 없을 것이고
사실 미술관이 정말로 모든 것을
위할 수는 없지
않나?
웃으며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개를 아끼는 동시에
개를 멀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고 말하고 싶은
국립기관의 너무 평범한 마음을

24년 2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9)
―――


이달의 총격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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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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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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