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2일 수요일

차양대 ― 슬픔을 붙잡는 방법

매일매일 알약을 먹는데, 이것은 모두가 익히 알듯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알콜의존증으로 뒤질 뻔했던 12년 말 이후로 매일매일 알약을 잘 먹는 습관을 만들고 굳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제 알약은 아침저녁으로 삼켜주지 않으면 섭섭할 간식 같은 것이 되었다. 최근에는 알약 먹기의 간식성을 강화하기 위해, 알약을 삼킬 때마다 몇 가지 영양제 곁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썩 성공적이다.

인지하기로 병의 치료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병의 원인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제거할 자원이 충분하다면, 제거한다. 원인을 알고 있는가, 원인을 제거할 자원이 충분한가. 이 두 가지 중 단 한 가지라도 충족할 수 없다면, 병으로 인한 증상을 완화시킴으로써 신체 기능을 가능한 만큼 보존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것은 뭐라고나 할까, 마치 먼지를 닦아내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로 대표되는 항우울제는 후자에 복무하는 약물이다. 누군가의 우울장애가 완치되었다면 그것은 당사자의 신체가 지닌 불가해한 자생력 덕분일 따름이다. 신체는 태울 수 있으며, 매우 섬세한 작동 방식을 지니고 있고, 그 메커니즘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기계이다. 그러니까 우울장애 때문에 알약을 먹는 일이란, 고장난 기계를 고치기보다는, 고장난 기계일지언정 어떻게든 작동시켜 그 효용성을 되는 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조이고 기름칠하는 일인 것이다.

오늘도 신입사원 필수 강의가 지루해서 이런저런 괴상한 생각을 했다. 그 중 하나는 '갑자기 영어를 잘 공부해보고 싶어졌는데, 남이 열심히 영어로 뭐라 말하는 것을 줄곧 듣고 있으면 그게 좀 될 것 같다' 정도다. 앱을 하나 다운받았는데 그 이름은 테드 서브타이틀이다. 거기에서 들은 어떤 강의에 따르면, 항우울제와 관련된 최신 연구 동향은 세로토닌의 존재를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한댔나, 더욱 효과적인 무엇이 있다던가, 그랬다. 먼지를 닦던 수건으로 돌연 기계 어딘가를 갈고 부수고 어찌저찌하는 찰나의 심상을 스쳐 보냈다. 그 약 왜 지금은 먹을 수 없지.

정신병리로서의 우울감은, 통상적으로 인지되는 슬픔과는 다소 거리가 먼 무엇이다. 어쨌든 대저 오류란 꽤나 자주 짜증나는 낭만을 천연덕스럽게 피워내곤 하는 법이다. 칼로 살을 찢거나 찌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높은 곳에서 투신하거나 목을 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 삶 지루해서 어떻게 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실제로 발병 시기인 09년에 비견하면 지금은 꽤 병세가 완화되었으며, 그만큼 삶이 조금 재미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어색하게 살아가는 일에는 여전히 자신이 있지만 고리타분하게 살아가는 일에는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간다. 그나마 붙잡아볼 만한 것이 이것인데, 아무튼 결론은, 어느 날 누군가가 우울장애를 획기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를 제공한대도, 그것을 거절하고 계속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같은 것이나 처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꼭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나 세로토닌 길항제 재흡수 억제제나 노르아드레날린-도파민 재흡수 억제제 같은 것이나.

항우울제의 금단증상은 꽤 괴롭다. 머리가 아찔하고 줄곧 꿈결 속에 있는 양 아득해진다. 항우울제의 상시 복용을 위해서는 한 달에 최소 5만원 이상을 들여야 한다. 그러니까 일을 열심히 많이 해야 하고, 회사에서 해고당하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아침 햇빛은 끔찍하고, 우울장애 완화에 도움이 된다.

오늘도 노동하는 신체로서의 규율을 훌륭하게 수호해냈다. 내일의 목표는 알람 시계를 하나 더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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