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1일 토요일

가마꾼

어디로 가는 중입니다. 어디로 가는 중이냐굽쇼? 저한테 묻지 마십시오. 가마에 탄 자가 가야 하는 데로 저는 갑니다. 가마에 누가 탔냐구요? 저한테 묻지 마십시오. 가마에 누가 탔는지 보이지 않으니까요.
저는 앞에서 가마를 메고 있습니다. 제가 뒤를 돌아볼 수나 있겠습니까? 제게 감히 그럴 기회가 주어질까요? 모가지가 날아가지 않으면 다행 아니겠습니까? 주춤거리다 넘어지면 또 어찌 되겠습니까? 저의 처지를 생각해주십시오. 설령 천운으로 뒤를 돌아본다 한들 가마 구경이나 할 모양이지, 열리지도 않을 들창 안쪽에 누가 있는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이 가마를 몇 명이나 수행하고 있는지나 알까 말까 할 노릇입니다. 가마에 누가 타고 있는지 가장 궁금한 사람은 제가 아닐까요? 그러나 제가 직접 들창을 열어볼 수도 없습니다. 제 두 손은 가마채를 붙들고 있습니다. 제 머리통은 언젠가 제 몸뚱이를 떠나더라도 제 손은 가마채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
어디로 가는 중입니다. 가마에 탄 자가 가야 하는 데로 저는 갑니다. 가마에 타고 있는 게 사람이기는 한 것일까요? 혹시 제가 메고 있는 것은 그저 작은 교여(轎輿)에 불과하고, 창을 열어 보면 그저 달달한 냄새 풍기는 술 단지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면 가마꾼들 모두 가마 내려놓고 노송 빽빽한 숲 어느 곳에서 자처해 길 잃으며 취하고 마는 것 아닐까요? 그러다 우리 모두의 머리통이 한데 모여 사이좋게 되는 것 아닐까요? 또는 귀신이 타고 있으면 어쩔까요? 하필 죽은 게 지체 높은 어른이고, 죽어 열명길 건너갈 때도 지체에 따라 가마를 타야 하는 바 제가 사역을 나와 있는 것이라면 저는 지금 제 발로 이승을 뜨고 있는 중이 아닐까요?
가마에 누가 탄 줄도 모르면서 가마에 탄 자가 가야 하는 데를 어찌 알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까? 저는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 제가 발 디디는 곳마다 구종(驅從)들의 벽제(辟除) 소리에 모두 피하여 길이 쫙 열리는데 저는 그 열린 길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벽제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으면 그곳이 당도할 곳 아니겠습니까? 저는 당도할 곳에 당도할 예정이고 걱정인 것은 딴 게 아니라 버선 속에서도 어찌할 수 없이 문드러져가는 제 발가락들뿐입니다. 아 불쌍한 발가락들이여.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고통은 모른다고들 하지 않던가요? 그러나 기실 이런 노래야말로 가마 메는 고통을 모르는 이들이 노래한 것이니, 이들이 대저 무엇을 알겠습니까? 고통에 메인 이들은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가마 메는 즐거움을 노래한 적 없는 이들만이 가마 타는 즐거움을 알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가마를 멘 저는 아니, 가마에 메인 저는 이만 갑니다. 저는 갑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