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3일 화요일

뱀 여자

그러나 어떤 뱀들은 여자다. 어떤 여자들은 뱀이기도 하다. 스스로와 불화하는 여인들을 뱀이라고 부르자. 뱀이 말한다.

중국의 창세신인 여와는 여자 뱀이었다. 여와는 흙 묻은 새끼줄을 휘둘러 인류를 만들었다. 구전이나 벽화에서 여와는 남매인 복희와 허리 아래가 얽힌 뱀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여와는 그런 자기의 형상을 본따 인간을 지었다고 한다. 하반신의 레퍼런스는 어디서 찾았을까?

인도의 신전에도 뱀들이 산다. 반은 인간, 반은 뱀, 남성형은 나가Naga, 여성형 나기니Nagini라고 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빌런인 볼드모트의 반려동물 이름도 여기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맹독을 지닌 뱀이 많이 사는 지역일수록 뱀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의 설화나 신화에서 뱀은 인간을 해치는 무섭고 요사한 존재로 그려진다. 드물게 제주에서 뱀에 대한 신앙의 흔적이 발견된다.

한편 영물들에게서 뚜렷한 성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가령 여우는 주로 여성으로 그려지고 뱀은 대체로 남성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성별을 결정짓는 요인은 주로 그들의 대목적이다. 여우의 소망은 인간이 되어 인간 남성과 결혼하거나 인간 남성의 간을 죽을 때까지 빼 먹는 것이다. 이 소망은 여성적인 것으로 통용되어 왔다. 뱀의 소망은 오래 살아서 용이 되어 승천하거나 때마다 처녀를 진상받는 것이다. 또한 이 소망은 남성적인 것으로 믿어져 왔다. 여우는 오래 살아 구미호가 되고, 뱀은 오래 살아 이무기가 된다. 오래 산 여우 중에 수컷은 없었을까?

이무기가 된 뱀 중에 암컷은 없었을까?

물론 암컷 뱀들은 이무기가 되기 어렵다. 원수를 갚다가 죽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인간이 가족을 활로 쏴 죽이면 당연히 앙갚음을 해야겠지만, 그러다 자기도 죽고 마는 것이 한국 여자 뱀들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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