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일 일요일

초신성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본다. 왜 창작은 우울감과 같은 종이배를 타고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이전에 과연 이러한 질문이 적합한 것인지 논증할 필요가 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 간단한 사례에서 출발해보자.
 
콘템퍼러리엠비언트공연미술극시를 쓰기로 마음먹은 P는 우선 거장들의 작품을 베끼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잘 진행되자 용기를 얻어 이름이 덜 알려진 사람들의 작품도 베끼기 시작했다. 어차피 동일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창시자 P는 걱정 없이 창작 활동에 신나게 매진했다. 누가 뭐라고 할 때까지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P의 작품은 계속해서 조회수가 0이었으므로
 
왜 나 자신의 조회수는 카운트되지 않는가? P는 그런 증오 섞인 생각을 하며, 가족의 아이디를 이용해 조회수를 십만까지 늘렸다. 그러나 여전히 P에게는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P는 과연 우울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사례로 삶을 끝마치게 될 것이다. P가 자신의 작법을 바꾸었다면, 다른 미래가 펼쳐졌을 수도 있다. 혹은 제목을 더 잘 지었더라면. 인디자인에 약간의 조예가 있어 어떻게든 클릭을 유도할 수만 있었다면. 그렇지만 P는 곤조 있는 예술가였다. 그는 우회로를 택하지 않았고, 우직하게 자신의 장르를 밀어붙였다. 그러자 누가 뭐라고 했다. P에게, 누가 뭐라뭐라 뭐라고 했고 뭐라고 한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것이 P가 창시자 P로 남게 되는 콘템퍼러리엠비언트공연미술극시사의 서막이었다.
 
우울감은 장르의 탄생을 수반한다. 그러나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우울의 장르가 예술의 장르를 결정한다고. 물론 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안 좋다. 우울감은 당하는 것이지 먼저 다가설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우울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한다. 앞서 언급한 P의 어마어마한 예술활동에서 P가 기여한 바는 미미하다. 그는 우울감에게 겨우 몸을 빌려줬을 뿐이다.
 
이것이 예술가들의 말로가 비참한 이유다. 처음에 산뜻했던 우울감은 이용할수록 괴물같이 커져 우울증으로 진화한다. 그렇기에 겁이 많은 나는 이제 이 사실을 말해야겠다. 이것은 창작이 아니며 예술과는 무관한 중얼거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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