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7일 목요일

무명용사

애초 혼란한 원고를 준 녀석에게 교정을 보시라고 뭘 줘 봤댔자 혼란한 교정을 해 올 뿐이다. 대체로 봤을 때 제대로 고칠 능력이 있으면 애초에 그렇게 쓰지도 않는다. 사장은 ‘그냥 교수가 해 달라는 대로만 하라’ 하지만, 그런 것은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나는 대체 뭐 하러 있나? 오늘은 옳은 로서를 틀린 로써로 죄 고치라 표시해 놓은 끼새수교 때문에 위가 쓰리다. 자신감 있으셔서 좋으시겠어요... 나는 위장에 빵꾸가 나려 하고 있는데... 제발 좀... 그런 거는 내가 할 테니까... 사전 한 번만 찾아보면 다 아는 그런 거를 왜... 왜 모르면서 아는 척하니 왜... 제발... 너네는... 지성의 담지자가 아니고... 이런 거는 그냥 아가리 쌉치고 있어... 제발... ㅅㅄㄲ들 진짜... 그만... 단도 들고 찾아가기 전에...

뭐 그런 험한 생각을 속으로만 하며, 도대체 무엇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 나는 나의 직업적 특성상 증오해 마지않는 그들의 얼굴(신기하게도 꼭 얼굴들이 어디 내걸려 있는데)을 들여다보며 단서를 찾아보려 하지만, 그저 보통 사람의 얼굴이 있을 뿐, 사진으로 알 수 있는 건 없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뛰어난 학자이며 좋은 이웃사람일지 모른다. 아주 개차반 같은 녀석이라고 욕하는 글도 가끔 찾지마는, 어디 다 그렇다고 할 수야 있겠는가. 문제는 분명 그들의 존재양식에, 세계에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안 된다. 내가 견딜 수 없다. 그들도 피해자입니다! 암요! 이건 다 그들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지 않으려는 내 잘못이다. 그렇다. 내 탓이다!

내가 입사하기 전, 어떤 교수 녀석이 □□□이라고 틀리게 쓰려는 걸 끝까지 □○□으로 고치려다 대판 싸우고 퇴사한 교정공이 한 명 있었다고 들었다. 그는 단 하나의 자음, ㅇ을 ㄱ으로 옳게 고치기 위해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우리 같은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노동 그 자체를 걸었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은 그의 불굴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로써와 로서 따위에서 물러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그의 얼굴은 물론이요 이름도 모르지만 그는 오늘 무명용사 되어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 잘못된 교정을 다시 옳게 되돌리며, 나는 그 무명용사가 왜 교수와 대판 싸웠는지 이해한다.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이해한다. 그것은 글자의 옳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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